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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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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영원화와 붕괴현상

  • 기사입력 : 1999-12-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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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밀레니엄이 눈 앞에 다가왔다. 사람들은 「새 천년」의 태양이 떠오르
    기를 기다리고 있다. 새 천년의 광명은 천년만에 맞을 수 있는 것이기에,
    생전에 경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100
    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에게 1천년은 「영원」을 뜻한다. 밀레니엄 축제는
    곧 「영원 맞이」 의식인 셈이다. 제한된 삶 속에 영원을 수용하려는 의식
    과 열망은 인간의 본성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천년을 전후하여 세상의 모
    든 사람들이 「영원」을 삶 속에 맞이하려는 공감의식은 매우 소중한 의미
    가 있다.

    새 천년에 대하여, 장밋빛 기대감이 있는 반면, 회색빛 불안감이 내재돼
    있다. 확실하게 단정해서 말하긴 어려우나, 2천년대는 더 빠른 변화 속에
    서 살지 않으면 안될 것이란 예측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변화에 미처
    적응력을 갖추기도 전에 새로운 변화가 쉴 새 없이 밀어닥친다. 뛰어가면
    서 고속 전철을 잡으려는 것처럼 변화는 항상 인간을 추월하여 달아나고 있
    다. 변화가 인간의 삶을 끌어당기고 모든 제도와 삶의 양식을 바꿔버린다.

    인간에게는 정신과 육체가 있듯이 「영원추구」와 「변화추구」의 양면성
    이 있다. 농경시대 이후 점점 가속도의 변화에 길들여져 오다가, 영상정보
    시대를 맞아 시·공간을 초월하는 변화에 직면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현대엔 변화가 곧 가치창출이고 덕목이 된다. 변화되지 않고서는 살 수 없
    다. 변화하되 남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하지 않고선 경쟁에 이길 수 없다.
    변화를 전제로 속도의 경쟁인 것이다. 「영원」으로 여겼던 모든 가치들도
    변화 앞에 맥없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지금까지 숭상되었던 도덕
    률, 가치관, 기존 질서, 고정관념 의식들이 붕괴음을 내며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가정, 가족, 결혼, 직장의 개념이 바뀌고 질서를 유지해온 모든
    관계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삶의 양식이 뒤바뀌고, 삶의 정체성에도 혼란
    을 겪고 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정답이 없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정년을 1년 남겨둔 국문학 교수의 말이 인상적이다. 자신의 스승이었던 교
    수들은 강의 노트 한 권으로 평생동안을 가르치는데 걱정이 없었다. 그런
    데, 오늘날 교수들은 1학기마다 새로운 강의 내용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
    다. 컴퓨터를 통한 정보화로 말미암아, 강의 내용은 한 번으로 가치를 상실
    하고 퇴색해 버려 새로운 내용으로 끊임없이 보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이다. 지식과 정보의 획득은 교수들보다 인터넷에 익숙한 학생들이 더 탁월
    하기 때문에, 지식을 제공하는 수업은 쓸모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창의력·
    상상력을 어떻게 길러줄 것인가 하는 교육과정을 새로이 창출해햐 하는 일
    이 급선무라고 말하고 있다.

    교실 붕괴 현상도 심각하다. 모든 질서가 무너지는 판에 교실인들 변하지
    않겠는가. 종전에는 지식과 점수에 의하여 평가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다양
    성 차별성 개성 창의성 상상력에 따라 얼마든지 새로운 평가를 받기에 이르
    렀다. 그런데도 수업방식은 구태의연한 성적 위주의 평가법에 의한 수업을
    하고 있으니, 현실을 도외시한 셈인 것이다. 시시각각의 변화를 따라잡기
    도 힘든 시대에, 학교에선 10년 전의 죽은 지식과 자료를 가지고 일률적으
    로 가르치고 있으니 교실이 붕괴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가정 붕괴현상도
    갈등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와 역할 등에 변화를
    인식하고 새로운 가치와 관계를 정립하지 못한다면 혼란과 갈등을 겪지 않
    을 수 없다.

    새 천년은 변화를 삶 속에 수용하여 어떻게 친화 관계를 만드느냐가 중요
    한 변수가 될 것 같다. 자연과 인간과의 친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친
    화, 종교와 종교간의 친화, 인종과 인종간의 친화.... 친화를 위해선 간격
    을 좁혀야 하며 양보와 협조관계가 중요하다.

    변화가 현대의 무기이고 삶의 방법이 되고 있지만, 인간은 불변의 가치를
    추구하려 든다. 어떤 변화에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성의 추구는 인간의 열망
    이고 본성이다. 진, 선, 미를 추구하는 공동체의 꿈은 퇴색되지 않는 가치
    를 창출하는 일이다. 붕괴되는 시대에, 시간의 침식과 변화에도 영원한 가
    치를 창출하여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변화에도 혼란과 붕괴를 막
    을 수 있게 정신적 가치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
    다.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새 천년의 인간상, 도덕률, 가치관을 정립하는
    일이 필요하다. /정목일 (기획출판국장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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