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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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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언론의 3단계 양육법

  • 기사입력 : 1999-11-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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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녀를 대하는 태도는 성장기에 따라 3단계로 나눠진다. 영·유아 시절에
    는 『칭찬』과 『격려』를, 감정을 이해할 단계에서는 善과 惡을 구별할
    수 있도록 엄격함이 필요하다. 분별력이 분명해진 청소년기 이후는 자율성
    을 존중하고 관대해야 한다.
    받아 들일수 없는 단계에서 비판과 질책이 행해지면 감당하지 못하고 좌절
    하거나 비뚤어진 인성을 갖게된다. 분별력의 시기에 엄격하지 않으면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격언을 놓고 후회할 수밖에 없다. 자율시기인
    청소년기 이후는 『父子有親』이 필요하다. 대부분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
    은 이 시기 부모의 잘못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자율성을 갖춘 인격체를 『成人』이라 하듯이, 국가나 사회도 자율적인 단
    계가 최종 목표다. 산업시대 초기, 60년대는 『칭찬과 격려』의 시기였다.
    이때 비판은 의욕을 꺾는 일이었다. 질책을 받아들여 소화할 능력이 없었
    기 때문이다. 절대권력은 이를 惡用해 언론을 순치(馴致)시켰고, 순치된 언
    론은 무역규모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 하는데 일조했다.

    그러나 이후가 문제였다. 사리 분별력이 필요한 시기에 엄격한 비판과 채
    찍이 없었던 우리 사회는 부도덕하고 분별력이 부족한 기형像으로 성장, 자
    율시대를 맞았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만 量産한 셈이다. 언론이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경제주체에 유착돼 있는 최근의 모습은 그 단적인 편
    린이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 우리는 몸살을 앓고 있다. 記者가 記者를 취재
    하고, 검찰이 검찰을 수사하며 급기야는 간첩이 통일운동가로 행세하는 혼
    돈의 시대를 맞은 것이다.

    환란은 극복됐는가?
    우리는 IMF를 맞고 만 2년을 지냈다. 최근 우리는 『환란을 극복했고 그
    여세를 몰아 이번 2/4분기 경제성장이 12%대를 육박, 과열을 염려해야 할
    시점』이라는 한국은행의 행복한 고민(?)을 듣고 있다. 통계수치는 물론 그
    렇다. 그러나 실제가 그런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구조조정의 성공적
    수행과 기술혁신 시스템의 구축에 실패하면 잠재 성장률이 90년대 6.7%에
    서 2000년대는 4%대 초반으로 급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국 전문가들
    의 지적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의 성공적 수행과 기술혁신은 이
    뤄지고 있는가?

    지난 2월 단행된 정부조직 개편은 오히려 몸집을 불렸다. 작은 정부를 표
    방하면서 장차관 2명을 증원하는 선으로 마무리 하고, 민간에 위탁했던 46
    억원의 컨설팅료만 낭비했다. 기업의 구조조정도 지지부진하다. 대우사태
    를 보듯 기업은 부도를 막는데 급급할 뿐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연구
    소 기능의 마비다. 생존 전략에 매달린 기업은 연구비를 우선 삭감했고, 연
    구소는 폐쇄직전까지 몰렸다. 연구원의 고급 인력은 해외로 빠져 나가 미래
    의 기술 개발을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환란의 주범이었던 과
    소비만 되살아나 기승을 부린다. 그 여파로 외환 채무는 국제 권고선인 GDP
    (국민총생산)의 30%를 초과해 35%의 위기선을 넘었고, 그동안 무작정 끌어
    쓴 국가 빚이 GDP의 20%선을 육박하고 있다. 국가빚은 前 정권때보다 3배
    나 불어났다. 성장률, 경상수지 등 호조를 보이고 있는 수치 이면에 도사리
    고 있는 「위기의 씨앗」이다. 결국 여차하면 또다시 환란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언론이 바로서야
    사정이 이런데도 言論은 말이 없다. 아니 문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시장논리를 무시하고 가해지는 지나친 정
    부의 간섭, 투자 의욕을 꺾고 있는 국세청의 과잉 조사, 개혁의 뒷전에서
    방치되고 있는 정치권 등은 적절한 조정과 질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언론
    은 침묵하고 있다. 과소비에 호화 사치 생활을 일삼는 일부 부유층의 의식
    을 계도하려는 의지마저 보이지 않는다. 언론은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진데
    다 사명감도 부족하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을 뿐이다.
    누가 할 것인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것은 언론인의 책임이
    다. 자기 희생을 생각하지 않고는 그 일을 할 수가 없다. 거대한 권력과 막
    강한 재력 앞에 숨죽이고 있는 언론의 초라한 모습을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
    다. 기만하고 오도하는 언론은 또다시 반복되는 퇴행의 역사뿐이라는 우려
    만이 팽배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 自律사회가 아니다. 순치된 언론이 심각
    한 자기 고뇌와 채찍을 통해 분별력을 갖춰야만 자율시대가 가능한 것이
    다. 언론이 하루속히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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