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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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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빼앗긴 문화재 돌려받아야 한다

  • 기사입력 : 1999-11-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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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략국들은 으레 문화재들을 전리품으로 여겨 약탈해 간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이나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문화재 가운데 상당수가
    고대 이집트나 희랍의 것이라 한다. 파라오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각종 이집트 유물들과, 고대 희랍 도시국가 시절의 빼어난 예술품
    들을 다량 소장하고 있는 위의 두 박물관에는 세계인들의 발걸음이 끊일날
    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도 어느 나라보다 많은 문화재를 빼앗긴 나라다. 日帝는 수십년간 우
    리 국토를 강점해오면서 筆舌로 헤아리기 힘들 만큼 여러 종류의 문화재를
    다량 약탈해 갔다. 오늘날 그들의 박물관 전시실을 채우고 있는 유물들 중
    우리의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들이 부지기수다. 일본 오사카시립동양
    도자기미술관에는 995점이 수장돼 있으며, 이 가운데 통일신라 도기 4점,
    고려자기 304점, 조선자기 485점 등 우리의 도자기가 약 793점을 차지한
    다. 말이 동양도자기미술관이지 실제로는 한국도자기미술관인 셈이다. 수장
    품 가운데에는 ‘청자조각동녀형수적’ ‘청자상감죽학문매병’ ‘백자청화
    누각산수문쌍이편병’등은 국보급 명품으로 손꼽힌다.

    일본인 가운데 小倉武之助는 일제강점을 전후한 시점에 대구를 근거지로
    하여 1천점을 훨씬 상회하는 값진 문화재를 반출해 가 개인박물관을 차려
    보관해 오다가 그가 죽은 뒤 소장품들은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日帝는 景福宮 慈善堂 건물을 통째로 옮겨갔으
    며 백제시대의 6층석탑을 가져가 石川縣 金澤의 한 공원에 세워놓았다.

    또한 낙랑시대의 옻칠공예품과 양산 북정리 부부총을 파헤쳐 나온 금세
    공 장신구를 가져갔으며 창녕·함안 등지의 가야시대 고분군들을 마구잡이
    식으로 도굴해 나온 엄청난 양의 출토유물을 가져간 것으로 확인되고 있
    다. 우리 정부가 파악해 놓은 일제때 유출 문화재는 3만점에 이른다고 하
    나 이것은 九牛一毛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밖으로 드러난 것이 이정도라
    면 개인이나 단체 등에서 비밀리에 소장하고 있는 우리의 유물들은 이보다
    는 적어도 수십배가 넘을 것이다.

    우리의 유물들은 일본 외에도 미국 1만4천여점, 영국 7천여점, 독일 2천
    여점, 러시아 2천5백여점, 프랑스 1천5백여점, 중국 1천4백여점을 비롯해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 네덜란드, 스위스, 헝가리, 벨기에, 스웨덴, 캐
    나다 등에 산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 유물들 가운데에는 가격을 치
    르고 구입한 것들도 있겠지만 대다수가 약탈해간 것으로 짐작된다. 주지하
    다시피 丙寅洋擾때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 해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
    서를 미테랑 前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반환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지금까지
    그 약속은 이행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 辛未洋擾때 약탈해간 우리의 화포
    와 군기 등 유물들이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와 버지니아 해병대박물관에
    진열돼 있다고 한다.

    약탈 문화재의 본국 반환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뺏어간 강
    대국들이 순순히 응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소장자
    들이 민간차원에서 간혹 본국으로 돌려보내오는 경우가 있다. 초대 조선총
    독을 지내면서 각종 희귀도서들을 수집해 일본으로 빼간 寺內正毅가 이 책
    으로 ‘데라우찌문고’를 만들었으며, 이 중 100여점이 그의 후손에 의해
    지난 95년말 경남대에 기증됐다. 이 책들 가운데에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생
    활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자료들이 다량 포함돼 있어 귀중한 자료로 꼽힌
    다.

    최근에도 일제때 조선총독을 지낸 齋藤實이 반출해간 고려시대의 銅鐘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보관해오던 일본인 高原日美子가 최근 조건 없이 우리
    의 문화재청에 기증해 왔다. 이 종은 11세기 때인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
    으로서 높이 71㎝, 밑지름 50㎝, 무게 230㎏에 달한다. 바깥면에 비천상과
    유두형이 도드라지게 드러나 있는 등 규모는 크지 않지만 신라때의 성덕대
    왕신종을 많이 닮았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한다. 이제 우리의 국력과
    외교력도 크게 신장돼 가고 있으니만큼 약탈문화재 반환문제에 보다 큰 관
    심과 노력을 쏟아야 할 때다. 프랑스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외규장각 도
    서’를 빠른 시일내에 되돌려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일본 각 지역에 산재
    한 우리 문화재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 널려있는 유출문화재의 정확한 목록
    작성과 유출경로를 파악해 약탈한 것이 분명할 경우 반환받기 위한 대대적
    인 협상을 펼쳐야 할 것이다./목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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