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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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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양귀비꽃같은 마음 흘러라

  • 기사입력 : 1999-10-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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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에 있어서 남강은 생명의 젖줄인 하나의 강이 아니다. 진주의 영혼이
    요, 숨결인 동시에 민족혼의 동맥이나 다름없다. 강은 문명을 낳아준 인류
    의 어머니로서 상징성을 갖지만, 남강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충절의 꽃향기
    가 도도히 흐르는 민족의 마음인 것이다. 남강은 진주의 상징어로 역사, 전
    통, 문화를 관통하는 영원한 언어로써, 또한 진주의 풍물을 드러내는 얼굴
    이다. 흔히 「촉석루」를 진주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山紫水明한
    남강 풍물의 꽃이기 때문이다. 진주 시민들은 남강을 통해 숨을 쉬고 미래
    를 꿈꾼다. 남강은 정신적, 정서적 통로가 되어 시민들의 가슴을 적시며 유
    유히 흐르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 신무기로 무장한 왜군에게 속수무책이던 관군이 진주성
    에서 대첩을 올린데 이어다음 해 계사년 6월 왜군의 재공략으로 성이 함락
    되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이 때 진주성 함락과 함께 최후를 맞은 民·官·
    軍이 무려 7만여명으로, 한 성의 공방전으론 세계 전사상에도 유례를 찾기
    힘든 최대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진주성의 함락은 당시 우리 겨레에게 최후
    의 보루를 잃는 절망감을 안겨주었고 한탄, 비애, 통한, 슬픔은 극한에 달
    해 있었다. 남강은 피로 물들어 진주성의 운명과 비운을 말해주고 있었다.
    남강이 바로 진주의 생명선이었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었고, 남강과 함
    께 살고 죽는 공동운명체임을 체험케 하였다. 진주성 함락으로 씻을 수 없
    는 절망과 패배감 속에 빠져있었을 때, 논개의 순국은민족혼을 부활시킨 횃
    불이었다. 승전군의 대장을 가슴에 안고 남강 속으로 뛰어든 논개의 순국
    은 7만여 전사자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통한에 사무쳐있던 겨레의 마음을
    위무해 주었다. 논개의 순국은 고통과 절망에 신음하던 민족의 마음을 달래
    고, 남강에 거룩하고 영원한 꽃향기를 띄워놓았다. 변영로 시인은 「논개」
    라는 시에서, 「강낭콩보다 더 푸른 강물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진주는 충절과 역사의 도시이고, 그
    영혼은 남강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남강변 뒤벼리 암벽에 친일파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두고,
    「삭제」와 「보존」의 여론이 맞서고 있다. 「지금 당장 이름을 지워야 한
    다」는 시민들은 「남강 뒤벼리 암벽에 친일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자체
    가 임란의 성지인 진주의 역사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
    면 일부 시민들은 「친일파의 이름을 그대로 두고 그 자리에 안내문을 세
    워 이들의 이름이 두고두고 역사의 수치가 되게하여 후손들이 교훈으로 삼
    게 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뒤벼리 친일파 이름 처리문제는 진주의 역사와 정신을 되새기게 하는 일
    이다. 남강의 푸른 넋과 논개의 순국얼을 모독하는 친일파 이름은 하루 빨
    리 삭제되어야 한다. 친일파 이름을 그대로 두고 안내판을 세워 후손들에
    게 교훈이 되게 하자는 뜻도 이해는 되지만, 이 일은 「수치의 교훈」보다
    남강의 상징성과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는 쪽으로 처리함이 마땅하다. 남강
    변은 곧 「성지」임을 인식하고 티끌 하나 묻지않는 정신의 순수성을 지켜
    나가야 한다.

    친일의 잔재를 없앤다고 해방직후 벚나무를 함부로 베어낸 일이라든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던 중앙청 건물을 국립중앙박물관을 신축하기도
    전에 국보 등 문화재를 전시할 곳도 없이 철거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그
    러나, 뒤벼리 친일파 이름 삭제문제는 이런 경우완 엄격히 다른 것이다. 수
    치의 흔적을 교훈으로 삼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으나, 뒤벼리 친일파 이름
    은 진주 정신과 영혼에 얼룩을 묻힌 것에 불과한 것이니, 신속히 지워버리
    는 것이 최선이다.

    차제에 논란이 일었던 논개 영정도 바꿔 친일시비를 없애야 한다. 국어 교
    과서에 수록된 문학작품의 대다수가 친일문학을 했던 문인의 것이라는 논란
    도 없는 것은 아니나, 논개의 영정을 친일경력의 화가가 그렸다는 것을 용
    인해선 안된다. 진주를 진주답게 하기 위해서 진주 정신과 영혼을 찾는 일
    이 시급하다. 남강을 「강낭콩보다 더 푸른 물결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
    은 그 마음」으로 흐르도록 해야 한다.
    정목일(기획출판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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