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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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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들여다보기와 발견- 박종현(시인)

  • 기사입력 : 2024-05-09 2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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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시절, 밭마당 구석진 자리에서 동네 누나들과 여자애들이 널뛰기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린 여자애들은 도우미의 손을 잡고 널을 뛰고, 누나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널뛰기를 했다. 1m 이상 높이 뛰어올라 두 팔을 날개처럼 펼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과 함께 환호를 보내곤 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동네 누나들과 여자애들이 즐겼던 널뛰기와 그네뛰기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다 ‘부녀자의 외출이 제한된 시대에 담장 밖의 세상과 지나가는 남자를 엿보기 위해 널뛰기가 시작되었다’는 널뛰기 유래설을 읽고 강한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일본 민속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한국의 민속을 조사한 뒤 널뛰기의 유래를 위와 같이 기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널뛰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대체로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우리 여성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을 했던 점을 감안할 때 담장 밖에 지나가는 남자들을 보기 위해 널뛰기를 시작했다는 말은 다분히 모순적이다.

    어린 시절 널뛰기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높이 뛰어오른 뒤 착지를 할 때는 매우 위험하다. 널뛰기를 하면서 담 너머 지나가는 남자한테 한눈을 팔다가는 널을 잘못 디뎌 발목을 다치기 일쑤다. 바깥에 지나가는 남자를 구경하기 위해 널뛰기를 시작했다는 말은 일본 민속학자들이 우리 고유의 우수한 문화를 폄훼하기 위해 견강부회식으로 만들어낸 말일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민속놀이를 만들 때도 단순히 유희에만 목적을 두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을 것이란 전제하에 널뛰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다산(多産)이나 기복(祈福), 벽사(闢邪)에 목적을 둔 민속놀이가 많음을 볼 때, 널뛰기도 농산물 다산과 직결되는 노동력 다산에 목적을 두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보았다.

    자연분만을 했던 옛날에는 임신만큼이나 안전한 출산이 매우 중요했다. 출산하는 산모의 골반이 열리지 않아 산모와 아기 모두가 사망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던 시대, 혼인을 앞둔 처녀들에게 순산을 위한 예비 운동인 골반체조가 필요했을 것이다. 널뛰기를 통해 호골(虎骨)처럼 굳어있는 골반을 느슨하게 하고, 그네뛰기를 통해 골반을 벌어지게 하는 예비 출산 운동을 하기 위해 만든 민속놀이가 곧 널뛰기와 그네뛰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 속으로 들어가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물의 이치와 본질을 만날 수 있다. 시 창작도 마찬가지다. ‘들여다보기’라는 자신만의 안목을 통해 사물과 일의 본질을 캐내고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일이야말로 시 창작의 출발이면서 정점이다.

    박종현(시인)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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