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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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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스무 살이 되면 사람이 된다고 거짓말을 했다- 김나리(작가)

  • 기사입력 : 2024-03-28 19:3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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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는 몇 살까지 살아요?”

    고양이가 스무 살이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 질문을 한다. 집고양이는 12~18년이 평균수명이라고 한다. 나와 사는 고양이는 평균을 넘었으며 잘 지낸다. 그리고 나는 이제 고양이의 죽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여러 고비를 넘겼다. 동물의학이 인간의학의 접근과는 다르다는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던 순간이 더러 있었는데,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가까운 동물병원에서는 열네 살이던 내 고양이가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으니 데려가서 편히 해주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수소문을 하여 멀리 있는 큰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고양이는 한 달 입원해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끌어안고 온 집을 뒹굴었다. 살아서 같이 집에 있게 될 줄은 몰랐다.

    고양이는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나는 20대 초반의 유학생이었다. 처음 아기 고양이를 데려와서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랐다. 고양이는 강아지와 여러모로 달랐다. 만지려고 하면 도망을 갔고 나에게 잘 보이려 하지도 않았다. 나는 강아지 훈련시키는 사람처럼 고양이에게 앞발을 내 손에 올리도록 가르친다거나, 높게 점프하는 법을 알려주려 애썼다. 고양이는 애쓰지는 않았지만 내가 하자는 것을 대충 따라해주었다.

    함께 20년을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었다. 이사를 가거나 서로 떨어져 지낸 때가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가 있는 곳을 집으로 여겼다. 나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열네 살의 고양이는 게다가 한국의 온돌 바닥이 꽤나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온 집을 다녀보더니,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내게 “여긴 왜 바닥이 따뜻해?” 하고 묻는 것처럼 소리를 냈다. 느아으아냐으옹! ‘늙은’ 고양이를 장거리 비행기 태워 한국으로 데려오며 조마조마했던 나는 온돌바닥에 대자로 누워 털 고르기를 하는 고양이 모습에 안도했다. 뜨끈한 온돌에 등 지지는 모습은 영락없이 사람 같았다. 나는 고양이에게 이런 거짓말을 했다.

    “스무 살 되면 너도 사람 될 거야.” 그러나 정말 스무 살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거짓말을 수습해야 했다.

    “그 사이 세상이 변했어. 고양이건 사람이건 오래 살아서, 서른 살이 되어야 사람 되는 걸로 바뀌었어.” 나는 수습하려다 또 거짓말을 했다. 기네스북 최고령 고양이는 서른 살을 넘겨 살았다. 그래서, 과연 고양이는 몇 살까지 살까? 나는 사람들이 묻곤 하는 그 질문에 바로 답하기가 때로는 어려웠다. 마치 내 집이 언제 사라지느냐는 물음인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스무 살 고양이의 일상은 평온하다. 관절이 약해졌고 소화력도 떨어졌으며,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고 약을 먹이지만, 삶을 자기 종의 평균수명보다도 오래 살아온 존재는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며 매일을 보낸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 자기 주장을 분명히 하지만 안되는 건 내려놓는 순간, 또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으므로 너그럽게 용인하는 때가 고양이의 하루를 구성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잠을 자거나 사람에게 안겨서 쉬는 데에 쓴다.

    스무 살이 된 고양이의 일상을 목도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나에게 아기로 와서 나보다 먼저 늙은 고양이는 내가 노인이 된 모습을 먼저 보여주었다.

    “고양이, 인간은 몇 살까지 살아?”

    “백 살이 되면 너도 고양이가 될 거야.”

    김나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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