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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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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배리어프리(barrier free)- 류위훈(시청자미디어재단 경남시청자미디어센터장)

  • 기사입력 : 2024-03-17 19: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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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막이 없었다. 범인은 늘 딸이었다. 넷플릭스 때문에 한때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었다. 나는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도 자막 기능을 켠다. 장애인방송 지원 기관 종사자로서 시작은 직업적이었지만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자막이 없으면 대사 내용을 자주 놓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딸은 매번 설정을 바꾸는 게 너무 귀찮고, 자막이 자꾸 어른거려 몰입에 방해된다고 했다.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는 ‘장벽이 없다’는 뜻이다. 1974년 국제연합 ‘장벽 없는 건축설계’ 보고서에서 고령자나 장애인들도 살기 좋게 물리적 장벽을 허물자는 의미로 쓰였으며, 문화예술 콘텐츠 향유, 정보 접근성은 물론 사회적 인식 영역까지 확대되어 사용하고 있다. 당연히 장애인방송 서비스도 여기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이 분야의 세계적 선진국이다. 우리를 앞선 나라는 영국 딱 한 곳뿐이다. 2015년 지상파 기준 자막방송 100%, 수어방송 5%, 화면해설방송 10% 비율로 서비스 제공이 법적 의무화되면서 이룬 성취다. 하지만 방송 분야뿐이다. 많은 선진국들이 영화, 뮤지컬, 오페라까지 배리어프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황을 보면, 법적 강제 못지않게 사회적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 영화 ‘명량’ 제작비 180억, ‘서울의 봄’ 제작비 232억 등 예산 규모를 보면 더 그렇다. 배리어프리 서비스 제작비용은 편당 500만~1000만원. 총제작비의 소수점 두 자리다. 비용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참에 경상남도와 창원시가 공적 지원하는 문화예술 콘텐츠의 배리어프리 서비스 제공을 적극 제안하고 싶다.

    작년 겨울에 딸, 아들과 함께 서울의 ‘어둠 속의 대화’ 카페에 갔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시장에 가고, 음료도 마시는 등 일상을 경험했다. 아이들은 처음엔 두려웠고, 점차 편안해졌다고 했다. 특히 90분 동안 자연스럽게 이끌어 준 안내자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했다. 막연한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와는 다른 감각을 가진 능력자라고 했다. 그즈음부터 딸의 태도가 살짝 변한 것 같다. 우리집 넷플릭스 계정을 켜면 한국 콘텐츠에도 늘 자막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다. 장벽 없이 함께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언제나 옳고 보편타당하다.

    류위훈(시청자미디어재단 경남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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