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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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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사람들, 모두 함께] #1 은둔형 외톨이 ② 간절한 기도와 눈물 섞인

은둔의 그늘에 흘린 눈물… 가정 넘어 사회로 번진다

  • 기사입력 : 2024-03-13 0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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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대면과 개인화가 보편화된 오늘날 사회에서는 경쟁 구도에 내몰린 청소년·청년들은 누구나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 있다. 앞서 기획보도 첫 편에서는 경남도내 은둔형 외톨이들의 삶을 통해 개인이 처한 상황을 살펴봤다. 이번 편에서는 은둔을 택한 이들로 인해 최소 집단인 ‘가족’과 최대 집단인 ‘사회’가 받는 영향을 차갑게 다뤄 본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은둔형 외톨이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향한다.



    가족을 병들게 하는 ‘마음의 벽’
    은둔하며 가족과도 소통 포기한 경우 많아
    부모 스스로 가정교육·훈육 등 죄책감 느껴
    사회 복귀 독려 포기하고 상황 숨기기도

    ◇가족 모두가 병드는 과정= 은둔형 외톨이를 둔 가족들의 부담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커진다. 금전적인 부담은 특히 정년을 앞둔 부모일수록 크게 다가온다. 하지만 돈보다 아픈 건 마음이다. 가족 간 무관심 속 견고해진 마음의 벽은 결국 모두를 병들게 만든다.

    은둔 7년 차 아들을 둔 미연(50대 중반·여·가명) 씨는 아침마다 아들의 끼니를 준비하고 출근에 나선다. 아들은 먹는 것 외에는 소비 자체가 많지 않기에 금전적 부담은 심하게 느끼진 않는다. 퇴근을 하면 집에 가족들이 모이지만, 저녁 식사는 아들 혼자 먹게 된 지 오래다. 미연 씨는 아들이 은둔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외식을 한 적도 없다. 남편 또한 말이 없는 편이라 미연 씨의 집은 고통스러운 침묵만 흐른다.

    현 상황에서 미연 씨의 꿈은 아들의 취업같이 거창하지 않다. 결혼 후 당연하게 그려 왔던, 평범한 가족의 저녁 식사 자리. 그것만이라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적게나마 대화가 이뤄진다고 해서 더 나은 가정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은둔 20년 차 아들을 둔 숙희(60대 중반·여·가명) 씨에게 가족 식사 자리는 불안을 삼키는 일이다. 휴일과 주말에 가끔 있는 식사 자리지만, 대화 중 의견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아들과 남편 간의 다툼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숙희 씨는 “아들이 은둔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심리 상태가 불안하고 충고나 조언에 반감도 센 것 같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부모에게까지 확장된 은둔의 그림자가 자식의 은폐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자식의 사회 복귀 독려조차 포기하고, 되레 사회생활 중에서도 자식의 상황을 숨기게 되는 것이다.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회장은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식을 은둔형 외톨이로 낙인찍는다고 생각해 상담 등을 받지 않는 부모들도 있다”며 “은둔을 숨기고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부모의 행동은 자칫 자식의 은둔 생활을 장기화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지켜줄 수밖에 없기에= “되돌아보면 딸이 커가는 데 있어서 엄격하게 훈육만 했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지 못했어요. 그런 가정 교육이 딸의 입을 닫게 만들고, 은둔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느껴져요.”

    2년째 방에서 은둔 중인 딸을 둔 현숙(50대 중반·여·가명) 씨는 딸의 은둔 생활이 본인의 잘못에서 시작됐다고 자책했다. 그는 때로는 부모와도 소통하지 않는 딸이 답답하고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이기에 품고 기도할 뿐이다. 현숙 씨는 가슴에 난 구멍보다 더 큰 사랑을 딸에게 쏟고 있다.

    아들과의 평범한 식사를 꿈꾸는 미연 씨는 반대로 ‘오냐오냐’ 식 가정교육이 은둔의 계기가 됐다고 생각하며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다. 미연 씨는 “맞벌이를 하면서 아들이 하고 싶다는 것은 다 해주고 잔소리도 하지 않는 게 맞는 가정교육이라 생각했다”며 “고등학교 진학 후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것도 내버려뒀는데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광철(60대 초반·남·가명) 씨는 아들과의 아픈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이 고등학생 때 나쁜 동급생으로부터 사기를 당해 상당한 금액의 빚을 지면서 집안이 완전히 무너졌고, 그때부터 아들이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충격으로 은둔을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지금도 경제 형편이 좋지 않지만 광철 씨는 열심히 일하면서 집에만 머무는 아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최근 ‘경남 은둔형 청소년·청년 지원 조례안’을 발의한 한상현 경남도의원은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당사자는 물론 함께하는 가족의 고통과 헌신의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상현 도의원은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가정이 파괴되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목격했다”며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당사자 한 명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 전체의 문제로 확대해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립 시 사회적 손실 1명당 15억
    청년 실업·혼인·출산율 저하에도 영향
    사회·경제적 비용에 심리적 비용 포함해
    총규모 고려한 정책 대응전략 만들어야

    ◇은둔형 외톨이 1명당 사회적 손실 15억원= 학령기를 마친 한 사람이 청년기인 만 25세에 은둔을 시작해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개시하지 않고 기대여명(59세)까지 빈곤한 상태에 머무를 경우 드는 사회·경제적 비용은 15억원에 달한다. 이는 2022년 3월 보건복지포럼에 발표된 ‘고립의 사회적 비용과 사회정책의 함의(김성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김 연구위원은 은둔형 외톨이에 투입되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대상자의 남은 기대여명에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국민 부담액을 각 곱해서 합하는 방식으로 계산했다. 그 결과 19세부터 은둔 생활을 시작하면 16억4500만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투입되고, 25세는 14억9800만원, 30세는 13억7400만원 등이 투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금액은 은둔 생활을 함으로써 정부로부터 받게 될 지원금과, 직장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내지 않을 세금의 총합이다.

    김 부연구위원은 앞서 언급한 사회·경제적 비용 외에도 심리적 비용도 고립의 총비용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봤다. 우리나라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10만원어치의 행복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4.79배인 47만9000원의 비용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은둔형 외톨이는 청년 실업과 혼인·출산율 저하 등 지표에서도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당시 김 부연구위원은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개인 단위의 심리·경제적 비용을 사회 단위의 총비용으로 추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은둔형 외톨이 규모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적 고립에 대한 사회적 관심뿐 아니라 실태조사조차 부재하다. 따라서 종합적인 정책 대응 전략이 없는 실정”이라고 제언했다. 이러한 의견에 따라 전국 단위의 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가 진행됐고 지난해 12월 결과가 발표됐다.

    ※기사 중 은둔형 외톨이 가족의 이야기는 경남도의회의 ‘경남도 은둔형 외톨이의 실태파악과 정책적 지원방안’ 보고서에 담긴 은둔형 외톨이 가족 인터뷰 대상자들의 답변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김용락 기자 roc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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