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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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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ON- 김시탁의 전원산책] (2) 창원 북면 명촌마을

쉼 없이 흐른다, 쉼 없이 춤춘다, 쉼 없이 달린다… 쉼 있는 이곳에서!

  • 기사입력 : 2024-01-25 21:51:40
  •   

  • 마을 뒤편 산등성에 오르면
    낙동강 가로지른 창녕함안보 한눈에

    가로수가 반기는 강변도로
    수변생태 공원에선 일상에 지친 삶 충전

    강줄기 따라 이어진 자전거도로
    바람 싣고 달리면 갈대가 반갑다고 인사

    소담한 전원주택 굴뚝엔
    저녁 하늘로 솟은 연기가 모락모락


    겨울의 수변 생태 공원은 적막하지만 운치가 있다.

    바람의 터치로 자연이 그려낸 격조 높은 작품들이 있어 사람들 발길 또한 끊이지 않는다.

    덜 마른 수채화와 수묵화의 신선함에 감동하고 세필로 그린 동양화와 강물에 산을 거꾸로 그려 넣은 데칼코마니. 그 다양한 장르에도 매료된다.

    창원의 북쪽 땅끝 명촌마을은 강폭으로 그림을 걸고 안개가 문을 열고 닫는 상설전시장이다.

    이곳엔 하늘조차 여백으로 비어있기 싫어 철새를 날린다.

    단숨에 휘갈겨 쓴 초서 같은 필체에 노을빛 구름이 찍는 낙관이 눈부시게 선명하다.

    창원 북면에 위치한 명촌마을 일원. 낙동강변 따라 펼쳐진 이곳에는 수변생태공원, 파크골프장, 야구장, 지전거도로 등이 있다./김시탁 시인/
    창원 북면에 위치한 명촌마을 일원. 낙동강변 따라 펼쳐진 이곳에는 수변생태공원, 파크골프장, 야구장, 지전거도로 등이 있다./김시탁 시인/

    ◇북면의 땅끝 명촌마을

    강이 흐르는 곳에 마을이 있다. 아니 강이 흐르다 숨은 곳에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는 화훼 명장이 살고 민물횟집 주인이 살고 교회 목사가 살고 시인이 살고 노인들을 주간보호센터에 태우고 다니는 요양보호사가 산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자식들을 도회지로 빼앗긴 노부모들이 감 농사를 짓고 산다. 이 마을에는 마을버스 한 대와 시내버스 두 대가 서는 종점이 있고 그 종점에는 그리움 쪽으로 가지를 뻗고 부동자세로 보초병처럼 서서 종점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노송이 있다. 버스는 이 종점에서 첫 손님으로 안개를 태우고 출발해서 마지막 손님으로 질긴 하루를 베어 먹고 방전된 사람들을 어둠과 함께 태우고 와 종점에 내려놓는다. 이 종점은 강변도로가 끝나는 곳에 위치해 있고 바로 옆에 민물횟집 두 곳이 있다. 이 횟집은 평소에는 향어회나 붕어찜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고 하모회 철이 되면 주차장이 모자랄 만큼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식사를 마치면 횟집 자판기에서 믹스 커피 한잔을 뽑아 강변도로를 걷다가 돌아간다. 이 마을을 외지인들은 강변마을이라 부르고 마을 사람들은 명촌이라고 부른다.

    힐링이 머무는 소담한 전원주택.
    힐링이 머무는 소담한 전원주택.

    ◇소담한 전원주택

    필자는 5년 전에 이 마을 촌집 하나를 사서 세컨드하우스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이주해 3년째 살고 있다. 콘크리트 마당을 깨어내고 잔디를 깔고 황토방을 손보고 마루도 깔았다. 울타리는 낮게 나무 울타리를 만들고 개를 풀어놓고 키우기 위해 철망으로 다시 둘러쳤다. 외벽에는 바다를 그리고 갈매기 두 마리도 날렸다. 바다가 처음에는 시퍼렇게 살아 파도를 쳤는데 세월이 가니 잠잠해져 이젠 미풍에도 물결이 없다. 하늘을 박차고 나르던 갈매기도 이젠 늙고 병들었는지 날개에 힘이 없다. 다시 화장하고 단장시켜 보려 해도 화구가 없으니 그저 마음뿐이다. 이사를 와서 적응하기까지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이젠 나름 생활에 탄력이 붙었다. 잔디마당 목탁에 앉아 숯불을 피워놓고 고기를 구워 먹기도 하고 별을 보며 아내와 옛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즐겁다. 저녁 달빛을 옆자리에 앉혀놓고 밤늦게까지 잔을 건넬 때도 있다. 이 마을에는 아직 불을 피워 난방을 하는 집들이 있어 저녁 하늘로 연기가 솟아오른다.

    필자도 처음 이사 와서는 겨울에 황토 온돌방에 군불을 지피고 잤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피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지만 군불 지핀 온돌방 아랫목에서 자고 일어나면 꿈도 따뜻하게 익는지 매우 개운하고 상쾌했다. 밤이면 가로등이 없는 칠흑 같은 하늘 위로 유난히 별들이 총총했다. 새들도 잠들어 밤중에 들려오는 소리라곤 풀벌레 울음소리뿐인데 그 소리마저 겨울에는 조용하다.

    명촌마을 산등성에서 바라본 그림 같은 낙동강과 창녕함안보.
    명촌마을 산등성에서 바라본 그림 같은 낙동강과 창녕함안보.

    ◇창녕함안보가 한눈에 펼쳐진 산등성이 전망대

    필자가 사는 집 바로 뒤로 숨은 강을 보러 올라가기 좋은 산책로가 있다. 그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낙동강을 가로지른 창녕함안보가 한눈에 펼쳐진다. 전망대라고 무슨 정자 같은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산등성이를 그렇게 부를 뿐이다.

    이곳 명촌마을로 이사 와서 마당에 개를 두 마리 키웠는데 이름이 청풍명월이다. 수놈이 청풍이고 암놈이 명월인데 명월이를 시집보내고 지금은 청풍이만 남았다. 매일 새벽이면 청풍이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데 전망대까지 오른다. 집에서 반 시간이면 오를 수 있으니 부담도 없다. 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청풍이가 오르막길을 잡아당겨 비교적 쉽게 당도한다. 거기서 낙동강을 바라보면 마을에서 끊긴 강과 강 건너 마을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강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와 다리 밑으로 흐르는 근육질의 강물과 강물의 뱃살을 후리는 바람은 축축하지만 감미롭다. 새벽마다 안개는 이 마을과 저 건너 마을을 접붙이고 강물 위에서 안무를 춘다. 창녕함안보를 거쳐 마을 쪽으로 굽이를 틀며 흐르는 강물이 더러는 시커멓거나 시퍼렇게 더러는 누렇게 누워 잠들었다가 홑이불 같은 안개를 걷어내며 꿈틀꿈틀 일어나 앉는 듯한 모습에 넋을 잃는다. 그 모습에 매료되어 새벽마다 그곳을 찾게 된다. 산책로는 농번기에 과수원을 오가는 차량 외에는 한적해서 청풍이를 데리고 안전하게 산책을 할 수 있어서 가끔씩은 고삐를 풀어주기도 한다. 산책로 주변으로는 대부분 감나무 과수원이 주를 이루는데 겨울 감나무가 잎을 모두 떨구고 전지로 가지가 잘려 나간 채 바람을 맞고 있다. 한창 수확기에 접어들어 감이 노랗게 익어갈 무렵에는 녹색 이파리 속에서 감이 빛을 뿜었다. 천상을 밝히는 별이 있다면 지상의 별은 감이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감은 진록의 이파리 사이에서 반짝반짝 빛을 냈다. 노랗게 잘 익은 별을 따서 덥석 물면 달콤한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별을 깨물어 먹고 나면 온종일 가슴속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이 마을 언덕배기 과수원에는 잠들지 않는 별이 밤낮을 밝히며 총총 빛을 낸다.

    산수유나무 가로수가 반기는 강변도로.
    산수유나무 가로수가 반기는 강변도로.

    ◇강변도로

    마을로 들어서는 강변도로는 중앙선이 없고 알맞은 간격으로 산수유나무가 가로수로 서 있다. 마을과 강을 직선의 경계로 그어 놓아 넘나들 수 있는 건 강바람과 새 떼와 안개뿐이다.

    중앙선이 없어도 들어오는 차와 나가는 차의 질서가 정연하다. 산수유 발목을 덮고 집단서식하는 금계국이 한창 꽃을 피울 때면 마치 노랑 물감을 쏟아부어 놓은 듯한 광경을 연출했다.

    강변도로 중간지점에 수령이 오래된 플라타너스 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나무 그늘 아래 평상이 놓여 있다. 여름이면 그 평상을 찾아 새벽부터 사람들이 몰려와 평상 쟁탈전이 벌어진다. 먼저 차지한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평상 위에서 놀다가 간다.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평상이 비는 일은 없다. 트럼펫을 불거나 모임을 갖거나 텐트를 친 사람들로 평상은 외롭지 않다.

    뱃살이 빠진 강가에는 억새와 갈대가 허공을 붓질해서 그린 수채화가 배경으로 걸려 있는데 계절마다 화가도 화풍도 화색도 달라서 보는 사람들을 탄복시킨다. 강이 허연 옥양목 이불 같은 안개를 걷어내 강변도로 쪽으로 밀어 올리면 오가는 차들도 전조등을 켜고 느린 속도를 유지한다. 높은 습도로 시작되는 하루는 건조하게 이어지지만 건강하다. 안개는 그렇게 소리 없이 하루를 열고 닫는다.

    ◇수변생태공원

    이 마을로 들어오는 강변도로 옆으로는 수변 생태공원과 파크골프장과 야구장이 있고 사람들이 찾아와 펑퍼짐한 일상을 풀어놓고 잡념을 베어 먹기 좋은 벤치가 있다. 그 벤치엔 사람이 없더라도 늘 앉았다가 가는 물기 있는 바람과 게으른 햇살과 뒤태가 고운 달빛이 있다.

    여름철에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사람들이 하나둘 수변공원으로 모여든다. 그들은 가족이거나 연인이거나 지인들이다. 모여든 사람들은 공원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고 돗자리를 깔고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든다. 지친 일상의 펑퍼짐한 궁둥이를 퍼질러 앉혀놓고 방전된 삶을 충전시킨다.

    겨울이 되니 공원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고 스산한 강바람만 억새 잎을 흔들며 몰려다닌다. 자전거도로로 헬멧을 쓴 무리들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이고 가끔씩은 강둑으로 말을 타는 사람들도 보인다. 승합차 한 대가 뒤 트렁크를 열어 놓고 중년의 남자가 색소폰을 불고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내 나이가 어때서, 아무도 묻지 않는 나이를 색소폰만 묻고 있다. 딱 좋은 나이일 것 같은 사람들이 몇 둘러서 음악을 듣고 있다. 하늘 위로 철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며 구름을 찢었다. 산불조심이라고 써붙인 자동차가 안내방송을 하며 지나갔지만 철새 울음소리와 색소폰 소리에 묻혀 버렸다.

    수변공원으로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러 오고 가족들이 여유를 즐기러 오고 강물 위로 드론을 날려 아랫것들의 정수리를 탐색하러 온다. 꽃이 피면 꽃구경을 와서 쑥을 뜯거나 냉이를 캐기도 한다. 겨울철에도 주말이면 아내가 수변공원 둑으로 겨울 냉이를 캐러 가는데 필자는 청풍이를 데리고 따라나선다. 겨울 냉이는 땅이 얼어 아무 곳에서나 캘 수 없는데 유독 수변공원 둑은 땅이 얼지 않는다. 거기다가 농약을 치지 않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 겨울 냉이는 잎이 발갛고 뿌리가 길고 살이 통통해서 식감이 뛰어나다. 무채를 넣고 콩나물을 풀어 끓인 냉잇국은 말할 것도 없고 냉이 무침 나물은 그 향을 그대로 흡수하므로 맛이 일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냉이에 밀가루를 발라 식용유에 튀긴 냉이 튀김이 최고다. 냉이 튀김을 안주로 북면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보면 한겨울 봄 한 사발을 바삭 튀겨 먹는 듯해 영혼의 뱃살이 차오른다. 아내는 수변공원 아래쪽 언덕에서부터 냉이를 캐며 마을 쪽 강변도로가 끝나는 곳으로 올라오고 필자는 수변공원을 한 바퀴 돌고 강변도로 끝에서 강물의 뱃살을 찢으며 유영하는 오리 떼를 보다가 아내와 만난다. 아내의 바구니에는 겨울 냉이가 가득 담겨 있었다. 굵고 싱싱한 뿌리에서 그윽한 향이 났다. 술상 앞으로 미리 미끄러지는 마음이 밀가루 반죽을 두둑이 묻혀 튀겨지고 있었다. 상상의 잔에 넘치는 막걸리가 꿀꺽꿀꺽 목젖을 타고 넘어갔다.

    갈대와 함께 시원하게 펼쳐지는 자전거도로
    갈대와 함께 시원하게 펼쳐지는 자전거도로

    ◇자전거도로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 자전거 전용도로로 사람들은 가깝게는 수산으로 멀리는 밀양이나 부산으로까지 달린다. 바람을 싣고 달리다 보면 바람이 페달을 밟을 때도 있다. 앞서가는 사람에게 안긴 바람을 뒤따르는 사람이 되받는다. 바람은 사람을 거칠수록 근육이 약해지지만 바람을 안는 사람의 체온은 올라간다. 바람은 유연한 몸짓으로 사람들의 가슴에 안기거나 등을 밀어준다. 그리고 어쩌다가 미끄러진 바람은 자전거 바퀴에 깔리며 외마디 비명을 질러댄다. 자전거도로 가엔 물풀들이 있고 수양버들이 있고 은사시나무가 있고 억새와 갈대가 있다. 자전거가 바람을 가르면 반갑다는 표시인지 그쪽으로 팔을 뻗어 몸을 흔든다. 강줄기를 따라 달려가면 강물도 뒤를 따라오며 출렁거린다. 출렁거림은 강물이 가속페달을 밟는 소리다. 매끈한 몸매의 자전거도로는 곡선일 때 아름답다. 곡선을 따라 페달을 밟아보면 몸이 곡선으로 굽는다. 곡선은 그리움 쪽으로 휘어진다. 마음이 미끄러지는 쪽으로 굽는다. 그대에게 가기 위해 나를 구부리는 눈물겨움 같다.

    김시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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