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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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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ON- 도희주의 반차내고 떠나는 트립 인 경남] (1) 고성 동해면 가도

뛰뛰빵빵!… 짬내서 콧바람, 힐링팡팡!… 잼나서 신바람

  • 기사입력 : 2024-01-04 20: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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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동진교~동해면 77번 국도

    무한대로 펼쳐진 쪽빛 바다
    역사가 깃든 내산리 고분군
    검포마을 공원 등 나그네 유혹

    바다를 끼고 달리다 마주한
    해상보도교 거북선 조형물 등
    곳곳서 반짝이는 비경에 감탄


    여행. 도시인들의 로망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머릿속으로 어딘가를 그리며 이번 주말엔 떠나야지, 내일은 정말 떠나야지 하면서도 몸은 도시를 벗어나지 못한다. 연중 한 번 정도는 거창하게 짐을 꾸려 펜션을 빌리거나, 글램핑 장비를 차에 가득 싣거나, 혹은 해외로 몇 박씩 떠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금 하는 일손을 놓고 불쑥 떠나고 싶을 때도 있다. 낯선 곳에서 길 위의 나그네가 되는 것.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몰랐던 곳을 혼자 떠도는 자유, 그게 여행의 본질이다.

    신문사에서 여행을 소재로 기사를 제안받았다. “경남에서 좀 덜 알려진 틈새 여행지를 소개해 주시면 됩니다”라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이 기획은 언제든 일손 놓고, 부담 없이 차를 몰아 혼자든 연인끼리든 아니면 주말 가족끼리라도 가볍게 휙, 다녀올 수 있는 여행 정보를 담을 생각이다. 되도록 국도나 지방도로를 따라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도희주의 반차내고 떠나는 trip in 경남’. 지금부터 함께 떠나보자.

    동진교 진입 전 풍경. 나뭇가지 사이로 만(灣)의 구도가 절경이다./도희주 동화작가/
    동진교 진입 전 풍경. 나뭇가지 사이로 만(灣)의 구도가 절경이다./도희주 동화작가/

    ◇해안로를 달리며 ‘시크릿 가든’을 듣는다

    마창대교를 달린다. 1차 목적지는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 고분군이다. 진북터널을 벗어나 진목교차로에서 반원을 그려 직진이다. 시속 50㎞ 구간. 차창 왼쪽으로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과속 단속을 주의하라는 내비게이션의 경고음이 반복된다. 가속페달에 발을 얹고 파란 바다 위의 반짝이는 윤슬에 정신이 팔리다 보면 금방 시속을 초과한다. 그래, 과속은 길에서나 인생에서나 금물이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건 혼자 여행할 때 나오는 습관이다. 이 도로는 예전엔 낚시꾼들이 도로 이면에 주차하고 낚시하는 걸 더러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사이 그 자리엔 ‘낚시금지’ 팻말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

    신기마을회관 삼거리에서 우회전이다. 동진교를 목전에 두고 좌회전 신호를 기다린다. 마산합포구 진전면과 고성군 동해면을 잇는 동진교는 77번 국도로,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까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든다.

    동진교를 빠져 나오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해안로.
    동진교를 빠져 나오면 펼쳐지는 아름다운 해안로.

    좌회전 신호에도 앞선 대형트럭들이 꿈쩍하지 않는다. 저만치 동진교를 가린 나뭇가지 사이로 만(灣)의 구도가 절경이다. 네모반듯하진 않으나 바다 쪽으로 열어놓은 창문 같은 착시를 일으킨다. 대형트럭 두 대가 서서히 동진교에 진입한다. 뒤를 따랐다. 좌우에 펼쳐진 바다 때문일까, 마치 유람선에 승선한 듯하다. 동진교 중간쯤에서야 차들이 정체된 이유를 알았다. 상판 노면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무한대로 펼쳐진 바다를 곁눈질한다. 바닷물만큼 융합이 잘 되는 물질이 또 있을까. 내 편, 네 편이 없다. 샛강으로 흘러온 물줄기를 이유 불문하고 그대로 품어준다. 어제를 기억하지 않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에 최선을 다하며 겸허하게 포용하고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흉곽이 들썩이도록 크게 숨을, 아니 자유를 들이마시고 내쉰다.

    당항포와 갈림길인 덕곡마을 삼거리에서 우회전이다. 우회전하기 전 맞은편 ‘삼거리이용원’ 간판. 유년의 기억이 출렁인다. 도심에서 사라진 간판 상호가 이곳에선 추억을 품고 맞아준다. 70년대 이용원은 마을(洞)의 중심가에 한 곳 정도 있었다. 여자아이들도 이용원에서 이발했다. 대부분 앞머리는 눈썹 위에서 일자형, 옆머리는 귀를 살짝 덮을 정도에다 뒷머리는 남자 어른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짧게 쳐올렸다. 당시 ‘할리카리’라고 불리었는데 High-Cut의 창원 방언으로 추정된다. 명절 앞둔 이용원은 늘 만원이었다. 아이가 이용원 의자에 앉기 위해서는 팔걸이에 걸쳐 주는 판자에 걸터앉아야 했다.

    내산리 고분군을 찾아든다. 외산1길에서 우회전 후 다시 우회전이다. 고분군은 작은 마을 규모와 맞먹는 면적이지만 지역민이 아니라면 쉽게 알 수 없을 듯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둘러본다. 야트막한 언덕 중앙 큰 고분 두어 개를 중심으로 군데군데 나지막한 고분들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사적 제120호 고성 내산리 고분군 21호분(2021년 정비)’ 표지석이 환하다. 5~6세기 고분군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경주나 김해, 함안이나 창녕의 고분처럼 웅장한 면모는 없으나 오히려 그래서 편하다. 평일이라 오가는 차는 거의 없다. 고분군만큼이나 한적하다.

    내산리 고분군 일대.
    내산리 고분군 일대.

    높이 1m 남짓의 카메라 삼각대를 펼쳤다. 저만치에 마실 나온 어르신이 유모차를 밀며 오다가 필자를 빤히 올려다본다. 카메라 삼각대를 놓고 사진을 찍으려는 이방인이 수상쩍어 보였나 보다.

    “아지매, 칙량(측량)하는 긴교?”

    웃음이 나올 뻔했다. 하지만 목례 후 답했다.

    “아닙니다, 어르신. 여기가 하도 예뻐서 사진 좀 찍으려고요.”

    참 오랜만에 들어본 구수한 말이다.

    1500년 전 이 고분군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큰 능 정도면 상당한 권세와 영화를 누렸을 법하다. 작은 능의 사람들은 어땠을까. 어쨌든 한 줌 흙이 되어 여기 함께 누워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다만 무덤 크기가 다를 뿐. 하긴 무덤 크긴들 무슨 상관일까. 세상 뜨고 나면 고래 등 같은 집도 이미 제집이 아닌 것을. 권력을 쥐면 마치 영생할 것처럼 상대를 짓밟고 쓰러트리려 한다. 언덕은 내려다봐도 사람은 내려다보면 안 된다고 하시던 생전 엄마의 말에 공감한다. 바람이 차갑다.

    동해중학교를 지나고 동해초등학교를 지나자 우측에 검포마을 공원이 보인다. 입구엔 ‘검포 전통마을 숲의 유래’ 안내판이 숲보다 더 나그네의 눈길을 끈다. 안내판 뒤로 길게 이어진 나무 사이 산책로. 정자의 팔작지붕엔 앙상한 나뭇가지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검포 전통마을 숲.
    검포 전통마을 숲.

    정자 허리께에 ‘무더위쉼터’ 팻말 때문에 겨울바람이 무색하다. 지난여름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를 꿰고 있는 듯하다. 마른 숲의 향기가 갯내와 교차한다. 숲길 안으로는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고목들이 세월을 가득 품고 있다.

    검포마을 숲을 출발한 지 2~3분 됐을까. 생각하지 못한 정취에 동공이 커졌다. 왼쪽은 숲, 오른쪽은 무논 한 마지기 끝에 바다가 닿아있다.

    수령이 달라 보이는 나목 일곱 그루가 횡대로 서 있다. 나목들은 무성했던 한 해를 뒤로하고 봄의 기도문을 암송하고 있는 걸까. 뒤편의 숲은 몇 종의 수종으로 울울창창하다. 아름답다. 아니 신비스럽다. 그 안에 어떤 초현실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비밀의 정원’이라고 명명하고 싶었다. 경남 고성군이 숨겨둔 보석, 동해면이 또 꼭꼭 감춰둔 비경이다.

    울창하고 키 큰 삼나무 숲속에서 신비로운 북유럽 감성의 바이올린 멜로디가 들려오는 듯하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피오뉼라 쉐리와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인 롤프 러블랜드의 듀오,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의 환상적인 콤비는 여러 차례 내한 공연으로 한국의 팬들을 열광시켰다.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공연 실황을 CD로 들었다. 2013년 내한 공연 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낙엽 지는 메마른 가을날을 촉촉이 적셔주는 가을비 같은 감동을 선사하지 않았던가. 한 곡이 끝날 때마다 CD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금도 그들을 기억하는 한국의 팬들은 앙코르 내한 공연을 애틋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북유럽의 작은 숲을 옮겨 놓은 듯한 숲 앞에 섰다. 시크릿 가든의 신비스러운 음악이 은은하게 귓속을 흐른다.

    종대로 서 있는 ‘시크릿 가든’ 나무 7그루
    종대로 서 있는 ‘시크릿 가든’ 나무 7그루

    2013년 내한 공연 주제였던 겨울 시(Winter Poem)는 지금 이곳이 가장 어울린다. 겨울은 모든 것이 삭제된 정적인 공간이지만 시크릿 가든이 들려주는 겨울의 시는 다르다. 다가올 봄을 맞이하려는 보이지 않는 역동적인 힘이 정적이면서도 활기차게 연주된다. 희망의 메시지다.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듣는 멜로디, 오감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따뜻한 겨울 메시지. 그래, 여기는 누가 뭐래도 나만의 시크릿 가든이다. 고개를 반대로 돌리면 무논을 가로질러 뻗은 좁은 길이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용궁으로 가는 길 같다. 걸어가면 용궁에 닿을까. 만약 간다면 간은 빼내서 비밀의 숲에 숨겨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반나절. 바다는 그 사이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난다. 군데군데 작은 구멍들이 숨을 쉬고 있다. 당장 호미 들고 들어가면 낙지 한두 마리와 조개 몇 마리는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고성 바다를 끼고 달리는 길엔 곡선구간의 연속이다. 곳곳의 휘어지는 길은 길만 휘어지는 게 아니라 운전대를 잡은 이의 마음도 부드럽게 휘어졌다 펴지기를 반복한다. 인생의 변곡점을 지나는 것처럼. 완만하다가도 급하게 휘어지고 모롱이를 돌아섰는데도 또 반대로 이어지는 모롱이길.

    바다를 가로지른 길 끝쯤에 특이한 건물이 보인다.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매립지다. 언젠가 가봤던 새만금 매립지를 연상케 한다. 어림잡아 왕복 10차로는 돼 보이는 길가에 빨간 조립식 PE드럼통 여러 개가 군데군데 놓여있다. 개통을 앞둔 도로 같다. 가볼까 말까. 때마침 승용차 한 대가 아무런 제지 없이 진입한다. 뒤를 따랐다.

    고성군 마동호와 당항포관광지를 잇는 해상보도교 위 거북선 조형물이 바다와 하늘과 어우러져 운치를 뽐내고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고성군 마동호와 당항포관광지를 잇는 해상보도교 위 거북선 조형물이 바다와 하늘과 어우러져 운치를 뽐내고 있다./도희주 동화작가/

    매립지 끝에서 우회전이다. 다시 바다를 끼고 달린다. 300m 정도 달렸을까. 거북선 한 척이 보인다. 설마? 다시 보니까 다리 위의 거북선 조형물이다. 고성군 마동호와 당항포관광지를 잇는 해상보도교로서 이순신 장군의 당항포대첩 승전지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주변엔 야간 조명까지 갖추고 있어 찾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단다.

    길은 한없이 바다를 옆으로 보며 뻗어 있다. 내려서 해안을 따라 휘어지는 길을 카메라에 담는데 문득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1500일간 무인도에 표류하다가 마침내 구조되어 복잡한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생존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약혼녀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사통팔달의 사거리 교차로에 서서 주인공(톰 행크스 扮)은 새로운 길을 찾는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이다.

    텅 빈 길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길은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기에 우리는 겁 없이 떠날 수 있다. 그래서 한없이 뻗은 텅 빈 길은 매력적이다. 아니, 그래서가 아닐지도 모른다. 길 끝 어디에선가 새로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내가 아닌 전혀 다른 나로서.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썰물의 끝자락인가 보다. 폐목이 수면 위에 뭉뚝한 그림자를 띠고 있다. 바람 등 떠밀린 물결이 말을 건다. “반차 내고 오길 잘했지?” 바다 한가운데 백로 한 마리와 또 다른 철새 두 마리가 생존을 위한 자맥질 중이다.

    잔잔한 ‘시크릿 가든’의 여운을 싣고 집으로 가는 길에 바다도 두고 간다.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내 목소리에 바다 냄새가 난다며 다음에 같이 드라이브를 청한다.

    #고성 내산리 고분군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 산191 일원으로 노인산과 철마산 사이에 낮은 언덕과 크고 작은 고분 28기가 있다.삼국시대 소가야에서 주로 해상교역을 했던 주변 세력에 의해 5~6세기경 60여 기의 봉토분이 축조됐다. 분구묘 축조 방식과 여러 덧널식 구조가 특징이며 각종 장신구류, 마구류 같은 위세품이 부장되고 특히 당시 신라·일본·마한·대가야와 교류를 짐작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됐다. 광복 이전에는 100여 기에 달하는 크고 작은 고분들이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중·대형분 28기만 남아 있다.

    #검포 전통마을 숲

    고성군 양촌리 1342-1 일원이며 250m의 숲길이다. 검포마을은 400년 전 집성촌으로 조성되었는데 임진왜란 당시 출입자를 검문하던 검문소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검포마을 앞 하천변에 조성된 숲은 검포마을에 정착한 김해김씨와 밀양손씨의 입촌으로 약 300년 전에 조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서어나무 30주. 팽나무 2주를 심어,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숲으로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로 잘 보존되어 있다.

    도희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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