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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11월- 이상권(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3-11-12 19: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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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전령이 시나브로 대지를 뒤덮는다. 지난밤 무서리는 세상을 얼어붙게 할 위용의 일단을 예고한다. 어김없이 순환하는 대자연의 섭리를 각인시킨다. 올해도 막바지에 다다랐음의 암시다. 영원불멸은 없다는 순리를 다시금 깨우친다. ‘무릇 천지란 만물이 머무는 여관이요, 세월은 백 년을 두고 지나는 나그네와 같다(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이백. 춘야연도리원서).’ 잠시 머물다 떠나기를 반복하는 세상이다.

    ▼연륜이 쌓일수록 ‘탈무드’의 현실적 인생 비유에 고개를 끄덕인다. 한 살은 왕. 모든 사람이 비위를 맞춘다. 두 살은 돼지. 진흙탕 속을 마구 뒹군다. 열 살은 새끼 양. 웃고 떠들고 뛰어다닌다. 열여덟 살은 말. 덩치가 커져 힘을 뽐내고 싶어 한다. 결혼하면 당나귀. 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한다. 중년은 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구걸한다. 노년은 원숭이. 어린아이와 똑같아지지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한때 왕이었지만 개처럼 구걸하다 원숭이처럼 늙어가는 숙명이다.

    ▼하지만 나이 듦은 공평하다. 늙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온다. 모든 걸 내려놓아도 본연의 의연함을 잃지 않는 게 자연에서 터득하는 삶의 지혜다. 영국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젊거나 늙거나 저기 저 참나무같이 네 삶을 살아라’고 했다. ‘봄에는 싱싱한 황금빛으로 빛나며 여름에는 무성하고 (중략) 마침내 잎사귀 모두 떨어지면 보라, 줄기와 가지로 나목(裸木) 되어 선 저 발가벗은 힘을’(참나무)

    ▼사계(四季)는 인생사와 닮은꼴이다. 봄이나 여름처럼 빛나는 청춘 예찬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만산홍엽 가을 정취에 취하는 듯하면 어느새 동토의 시간이 펼쳐진다. 자연에 순응하며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이치를 체득한다. 11월은 지난 궤적을 돌아보는 즈음이다. 무심한 세월은 또 그렇게 흘러간다. 다음 주면 벌써 첫눈 내린다는 소설(小雪)이다.

    이상권(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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