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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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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장소의 기억을 꺼내다- 원은희(시인·성재일기간행위원회 회장)

  • 기사입력 : 2023-11-08 19: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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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러지고 엎어지던 저항의 역사 위에 학문과 체력을 연마하며 피 끓는 함성을 피워 올리던 곳, 그곳에 학교가 있었다. 개인의 삶이 결코 역사와 무관할 수 없듯이 나라에 위기가 닥칠 때면 온몸을 던져 불의에 맞서던 이들이 연대하던 곳 .

    일제강점기, 교육을 통한 계몽의 중요성을 절감한 성재 권오봉은 1898년 단신 상경, 독립운동가 양성기관인 사립흥화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후, 고향인 진전면 오서리로 돌아와 사립경행학교를 설립하였다. 민족정신이 투철한 선각자였던 그는 안동권씨 재실을 배일사상과 민족혼을 일깨우는 독립운동의 산실로 거듭나게 했다.

    18년간 교육에 투신했던 그는 당시로서는 금서였던 유년독필, 월남망국사와 조선망국사 등을 부교재로 활용하며 많은 시간을 항전의식을 고취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 결과 임시정부 활동을 한 죽헌 이교재, 삼진의거 주역이었던 권영조, 고현시장 의거를 조직했던 권오규를 비롯, 변상헌, 변우범, 임종국, 권오성, 이기영, 변상술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그들은 나라 안팎에서 독립운동의 주역이었거나 애국지사로 옥고를 치렀거나 순국하였다.

    4·19의거의 도화선이 되었던 3·15의거와 부마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창원정신의 맥은 삼진만세운동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다. 시인이자 아들이었던 권환을 비롯, 권오익, 강호, 권영운 등 걸쭉한 인재들의 의로운 기상이 서려 있는 경행재는 항일투쟁과 민주화의 초석을 다진 장소이다. 1985년 경상남도 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경행재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맞은편 담장 앞에 권오봉과 권영조 선생의 공적비만 나란히 서 있다. 민족의식 키워냈던 권오봉, 권영조의 비분강개도 제각각 비 하나로 쓸쓸하다.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 가는 이들을 위무해 줄 차례다.

    음지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과 재산을 조건 없이 내놓았던 이들이 의미심장한 고군분투를 구체화했던 경행재, 그 장소성을 환기하고 유의 미화하는 게 우리들의 책무가 아닐까.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종횡무진 그곳을 수놓았던 발자취를 현재화하고 담론화하는 것이 남겨진 자들의 과제다.

    원은희(시인·성재일기간행위원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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