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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영웅의 시대- 유영주(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23-08-03 19:3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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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야흐로 영웅의 시대에 살고 있다. 슈퍼 히어로 영화가 나오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열광한다. 다음 편을 기대하는 후속작은 기본이고, 새로이 다시 시작하는 리부트까지 제작된다. 사실, 영웅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구분하지 않고 인기였다.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와 난세에 나라를 구한 이순신도 빼놓을 수 없다. 슈퍼맨, 원더우먼,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어밴저스 등 영웅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겨나고 있다.

    영웅 캐릭터들은 악역들이 판을 치는 세상일수록 빛난다. 그런데 영화 속 모습이 우리네 세상과 참 묘하게 닮았다. 세상엔 빌런 역할을 하는 악당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안하무인 격의 진상 고객, 교사를 하인 부리듯 대하는 학부모, 미투 운동까지 벌여야 멈추는 직장 상사, 왕따와 편 가르기의 최강자들.

    이런 악당들 때문에 마음 아픈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폭언과 부당한 대우에 맞서 소심한 눈길로 둘러보지만, 영화 속 영웅은 어디에도 없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우울증 환자가 35% 이상 증가했고, 국내 우울증 환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당장 가까운 큰길만 다녀봐도 신경정신과 의원이 언제 이렇게 생겼나 싶을 정도로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우울증이 있다거나 신경정신과에 다닌다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그러니 남모를 속앓이를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 작년 이맘땐 나조차 견디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무척 힘든 시기였다. 그즈음 주말마다 땡볕 아래 벽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고, 다행히 마음의 근육을 단련할 수 있었다.

    얼마 전 큰비가 와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생사를 넘나들던 사람들은 뜻밖의 장소에서 영웅을 만났다. 화물트럭 기사가 그 주인공이다. 자신의 화물차를 딛고 육교 위로 먼저 올라간 기사는 터널 아래쪽에 매달린 이들을 차례로 끌어올려 구해냈다.

    나 또한 살면서 영웅들을 여러 번 만났다. 대여섯 살 무렵이었나, 밤늦게 일 마치고 오는 엄마를 어두운 골목에서 홀로 기다린 적이 있었다. 그때 빵과 우유를 건네며 같이 있어 준 앞집 언니가 내겐 작은 영웅이었다. 어느 해 여름엔 학교 앞 도로가 물난리 난 적도 있었다. 가슴께까지 차오른 물길을 헤엄치듯 걸어가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트럭 기사님 덕분에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의 작은 영웅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지금도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품어 주며 살아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철없을 땐 누구나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별일도 아닌 일에 영웅이란 칭호를 붙인다며 고개를 갸우뚱한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악당들이 매일같이 생겨나는 세상 탓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악당들을 참교육시키는 영웅을 보는 건 언제나 짜릿하고 통쾌하다. 문제는 멋진 영웅들은 영화 속에서만 산다는 거다. 이제는 우리가 영웅이 되어보자. 작은 배려로 영웅이 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미는 손 잡아주기만 해도 영웅이 된다. 힘든 얘기 들어만 주어도 누군가의 영웅이 될 수 있다. 상처 난 마음 보듬어주지는 못할망정 소금까지 뿌리지는 말자. 바라건대, 웬만한 영웅은 영웅 축에도 들지 못하는 세상이 오기만 간절히 소망해본다.

    유영주(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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