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9일 (월)
전체메뉴

[열린포럼] 어중이- 하헌주(시인·밀양문학회장)

  • 기사입력 : 2023-07-31 20:00:48
  •   

  • 어중이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쓸모가 없는 사람을 말하거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아니하여 태도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다. 어중간(於中間), 거의 중간이 되는 곳이나 그런 상태에서 비롯된 말이다. 여러 방면에서 모인 잡다한 사람들을 낮잡아 이르는 말인 ‘어중이떠중이’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7월 한 달은 몸도 마음도 거의 젖은 채로 살아온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장마 피해를 본 모든 사람에게 고개 숙여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햇볕 쨍쨍한 창문을 여는 것보다 촉촉한 물기가 느껴지는 바람이 늘 좋기는 하였으나, 요즘은 그 마음도 죄송스럽다.

    올해도 절반이 지나 하반기로 접어들었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다. 반평생 넘게 사는 동안, 나는 참 어중간한 사람이었다. 무엇이든 아주 못하지는 않지만, 프로처럼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외모도 그렇다. 키와 덩치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얼굴도 못생기지도 잘생기지도 않았다. 신발 치수도 적당한 260이다. 좋아하는 음식도 그저 그런 평균치다. 내 의견을 낼 때도 장단점의 경계선에서 늘 헤매곤 한다. 매사에 호불호가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늘 어떤 한 분야에 빛을 발하는 사람을 존경해 왔다. 나는 그동안 나의 세계관이 아닌 누군가의 논리와 입장에 빗대어 살아온 것이 분명하다. 소위 무슨 전문가들처럼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경지가 참 부러웠다.

    그러나 어중이가 되기까지도 어찌 보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떤 수준의 중간 언저리도 어렵다. 요즘 유행하는 생활체육의 종목에 중간 정도 실력이 되려면 최소 수년 동안 개인지도를 받고, 제 시간을 엄청나게 투자해야 겨우 시합에 출전할 수 있다. 아무리 타고난 운동신경이 있더라도 말이다. 또한 악기 연주나 노래 실력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볼 때와 직접 해본다는 것의 차이는 스스로를 참 겸허하게 만들게 마련이다.

    또한 중요한 점은 우선, 내가 진짜 어중이인 것을 아는 일이다. 대다수 어중이는 끓지도 않고 넘치려는 어설픈 태도가 문제다. 전문가들, 즉 진정한 고수가 보면 참 꼴불견이다. 입체적 사고가 없는 평면적인 논리로는 근접할 수 없는 차원을 인정하지 못하는 불행한 경우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하지 않았는가. 내가 어중이임을 인정하면 오히려 세상이 더 고맙고 따뜻해진다. 가장 먼저 나의 태도부터 달라질 것이다. 100이 최고 고수의 경지라면 내가 40~50 정도 된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큰 기쁨이고 축복인가!

    일찍이 신경림 시인이 말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고. 그렇다. 우리 어중이들은 큰 욕심 없고 담담하며 소박하다. 여기저기서 자주 출몰하는 동지들이 많아서 늘 즐겁다. 어중이도 못 되는 사람에게는 좀 우쭐대다가 금방 내 한쪽을 내어주며, 더불어 어깨동무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어서 좋다. 반드시 그리해야 진정한 어중이다. 우연히 만난 어중이들끼리는 두말할 나위 없이 밤새 무릎을 맞대어 대작해도 좋으리라. 그 잘난 고수들 안주 삼아 씹어가면서 말이다. 공동의 적(?)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크고 신선한 즐거움인가!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가 확 풀릴 것이 분명하다.

    삶의 자세를 낮추면 낮은 것이 잘 보이지만, 높은 곳은 더 멀어진다. 그러니까 스스로 잣대가 중요하다. 원대한 목표를 내 기준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그렇다고 아름다운 꿈을 포기하고, 안이하게 그저 만족하며 살라는 말은 아니다. 타인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나 자신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또 하루가 저문다. 나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어중이 동지를 만나러 나간다. 아직도 퉁퉁 부은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당신의 어깨를 툭툭 칠 것이다.

    하헌주(시인·밀양문학회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