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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엄마와 함께한 스페인 여행- 주향숙(시인)

  • 기사입력 : 2023-07-27 19:4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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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둘째 아이 수능이 끝났고 어머니 팔순이었다. 남동생이 “누님도, 어머니도 그동안 애쓰셨으니 해외여행 한번 다녀오시죠.” 했다. 언제나 주변을 챙기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하는,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뻐근해져 오는 동생이다.

    유현민 작가의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을 읽었다. 자전거에 수레를 매달고 중국의 70대 왕일민 할아버지가 그의 100세 어머니와 중국 최북단 탑하에서 최남단 해남까지 우여곡절 떠난 여행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그 어머니의 환하게 웃는 얼굴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어머니께 그런 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 이번 여행지는 스페인으로 정했고, 나의 두 아들도 동행했다. 다정한 나의 두 아들은 여행 내내 할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드릴 셈이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루프트한자 독일항공기는 프랑크푸르트를(약 2시간대기) 경유, 총 17시간 만에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 도착했다. 바다를 닮은 테주강의 삼각하구 리스본에서의 첫날밤. 주무실 때 남편이 챙겨준 수통에 뜨거운 물을 담아 양옆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드렸더니 어머니는 연신 “고맙다, 고맙다” 하셨다. 요즘 들어 부쩍 고맙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이른 아침 포트에 물을 끓이고 어머니와 차를 나누며 숙소에서 바라보는 이국의 오렌지색 지붕이 장난감 집처럼 다정하고 예뻤다. 다시없을 이 순간, 이 거리와 이 새벽. 그 풍경을 오래오래 가슴에 담았다.

    여행 중 ‘로시우 광장’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자유롭게 골목을 유영하며 사진을 찍고 작은 가게에 들러 기념품을 고르느라 생각보다 멀리 와버렸던 것이다. 서둘러 돌아갈 길을 찾아 걷고 또 걸으며 낯선 길 위에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은 잃지 않았다.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때 택시 한 대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고 패키지 일행과의 약속 장소인 ‘동 페드로 4세 동상’ 앞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어머니와의 여행에서는 종종 이런 행운이 따랐다. 어머니는 날씨 요정이기도 하셨다. 어머니와 함께라면 그곳의 날씨는 언제나 맑았다.

    ‘까보다로까’로 이동했다. ‘까보다’는 끝이란 뜻이고 ‘로까’는 곶이란 뜻이다. 절벽에서 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여행자에게 이곳의 빨간 등대는 바다의 길을 일러주고 있었다. 십자가 돌탑에는 “AquiOndi A Terra Se AcabaE O Mar Comeca” (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이곳에서 바다가 시작된다)라는 포르투갈의 대문호 카모잉스(Camoes)의 시구가 새겨져 있다. 육지의 끝에서 미지의 바다로 나아간 대항해 시대의 모험가들처럼 아름다운 희망을 꿈꾸어 보았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소금에 절여 말린 바깔라(대구)로 만든 생선요리 바깔라우를 먹었다. 세 명의 악사가 테이블로 다가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연주했다. 머나먼 타국에서 듣는 가요는 그리움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한식당을 만났을 때 시래기 된장국과 공깃밥 한 그릇에 왈칵 쏟아지는 눈물처럼, 매일 먹는 밥이건만 이국에서 우리는 그 밥 앞에서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것처럼, 어머니는 특유의 높고 가는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셨다. 해 질 무렵 골목에서 놀고 있는 나를 향해 “밥 먹으러 오너라.” 부르시던 어린 시절의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주향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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