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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이제는 방향이다- 윤재환(의령예술촌장)

  • 기사입력 : 2023-07-24 19: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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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지난해 6월 30일 오후 3시에 인생의 마지막 퇴근을 했다. 그리고 1년간 공로연수에 들어갔다. 공무원 신분을 가진 상태에서 출근은 하지 않고, 새로운 희망의 사회로 나아가는 적응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지난달 6월 30일 자로 공로연수가 끝나고 공무원 신분에서 법적으로 완전히 해제되었다. 그러니까 공직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때인 1988년 7월 19일 이전으로 신분이 되돌아갔다. 딱 35년 만이다. 그때는 젊은 희망의 민간인이었는데 이제는 낡은 퇴물의 민간인으로 바뀌었다. 그러니 자유인이 된 셈이다. 다시 말해 완전한 백수가 되었다.

    정말 많은 시간을 한결같이 걸어왔다. 스물여섯 살에 첫 발령을 받은 이후에 예순한 살이 되도록 공로연수를 포함해 35년간의 공직생활을 이어왔다. 참 긴 시간이다. 그리고 앞만 보고 왔다. 그 앞길에는 나 자신을 비롯해 가족이 있었지만 그 누구보다 우선인 사람은 바로 주민과 또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가족을 위하고 국민을 위해 오로지 한길 만을 앞만 보고 걸어왔다.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곳을 다녔고, 많은 글도 썼다. 그리고 그 길은 이제 멈췄다. 다시 자유인이 되어 백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오로지 나를 위해 살아가야 할 시간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다. 그동안 너무 빠르게 살아왔다. 물론 젊은 시절에는 빠르게 살아야 했다. 쏜살같이 빠르게 또 힘차게 내려가는 하천물처럼 그렇게 흘러가야 했다. 그 흐름은 이제 넓고 큰 강에 도달했다. 흐르는 듯이 안 흐르는 듯이, 그러나 흐린 물이든 맑은 물이든 모든 물을 다 포용하며 유유자적하게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강물처럼 온화하고 여유로운 시간으로 흘러가야 할 때다.

    이제 내가 가야 할 길은 방향이다. 앞으로만 나아갈 것이 아니라 가끔씩은 멈춰 서서 쉬어도 보고 좌우도 바라보고 위도 바라보고 또 아래도 바라봐야 할 시간이다. 그렇게 속도보다는 어디를 어떻게 가든 방향으로 가고자 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따라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가려고 한다. 느리지만 천천히 사색하며 때로는 낭만적으로 가련다.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숲도 보고 흐르는 물도 바라보고 하늘도 보고 또 해와 달과 별도 보며, 그렇게 바람을 품고 꽃길로 가련다. 아름다울 것이다. 여유로울 것이요, 낭만적일 것이다.

    직진이 아니라 우회전도 하고 좌회전도 할 것이다. 누가 가라고 하는 방향이 아니라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함께 갈 것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을 만날 것이다. 가슴에 품은 뜻이 같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고, 그리고 방향이 같은 사람과 함께 갈 것이다. 감성 가득 안고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 갈 것이다.

    그동안 가보지 못한 길도 가고 또 놓치고 왔던 길도 가볼 것이다. 좋았던 길도 다시 갈 것이다. 만나지 못했던 사람도 만나고, 또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날 것이다. 새로운 사람도 만날 것이다. 역시 뜻이 통하고 방향이 같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갈 것이다. 그렇게 가다 보면 나의 삶이 뜻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자유롭고 희망이 있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길은 평화로울 것이요, 풍경은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빛은 찬란할 것이다. 또한 보람은 클 것이고, 가치는 높을 것이다. 그 방향을 안고 갈 것이다. 산과 바다를 따라 길을 걷고 산을 오르고 기타를 연주하며, 음악회도 하고 커피도 마실 것이다. 여행도 하고 영화도 보고, 또 헌혈도 계속할 것이다. 그 모두가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그 방향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모두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삶의 나침반이 되어 기쁘게 안내해 줄 것이다. 즐거울 것이다. 재미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 방향으로 간다. 그래서 오늘의 삶이 평화롭다. 그리고 아름답다.

    윤재환(의령예술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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