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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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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를- 오인태(남정초등학교 교장·교육학 박사)

  • 기사입력 : 2023-07-23 19: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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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살이에서 ‘무엇’이란 대개 직업, 지위와 관련한 것이고, ‘어떻게’는 삶의 철학이나 방식, 또는 태도와 관련된 문제다. 인간 탐구가 목적인 인문학이나 인성 교육은 주로 ‘어떻게’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마땅히 학교 교육도 학생들에게 어떻게 사느냐와 관련한 가치관, 인간관계, 그리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일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학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사회화이다. 학교 교육이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을 목표로 삼으면 학교의 기능은 사회화보다 선발기능에만 치우쳐 왜곡과 파행으로 치닫게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학생들을 ‘어떻게’가 아니라 오로지 ‘무엇’이 되기 위한 경쟁체제로 내몰고 있다는 점이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학생들이 이 ‘무엇’조차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부모가, 학교가, 사회가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국가가 필요한 인력을 공급받기 위해서. 그런데도 ‘이게 다 너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포장돼 아이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옥죈다.

    누구나 되고 싶어 하는, 되라고 강요받는 그 무엇이란 대개 보수가 많고, 안정되고, 권력이 따르고, 거기다 공익에 이바지하는 일이면 금상첨화인, 그런 지위나 직업이다.

    문이 좁을수록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학교는 부모의 요구에 이끌려 아이들을 닦달할 수밖에 없고, 좁은 문으로 가는 줄을 세우다 보니 교육은 획일화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할 소수를 제외하곤 나머지는 들러리만 서야 하는, 재미없고 부조리한 이런 교육을 언제까지 계속하려는가.

    누구나 되고 싶어 하는 그 ‘무엇’은 아무나 될 수 없지만, 누구나 ‘어떻게’는 살아야 하는 법이다. 선택이 가능한 일이다. 살아보니 ‘무엇’이란 ‘어떻게’ 사는 데 요긴한 수단이나 방편은 될지언정 그것으로 모든 걸 다 얻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 않던가.

    오인태(남정초등학교 교장·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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