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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유승영(시인)

  • 기사입력 : 2023-07-20 19: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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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이면 날마다 비가 내린다. 아이가 잠시 살았던 청주는 비(雨)로 인해 사람이 실종되고 그 짧은 2분 만에 급물살이 사람을 쓸어갔다.

    세상은 갈수록 산 넘어 산이다. 현기증이 날 만큼 소리 없는 출판 작업실 못지않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마치 무음의 세계처럼 어딘가에서는 급물살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어딘가에서는 전쟁의 암흑 속에서 불안에 떨며, 어딘가에서는 AI들이 사람처럼 인간의 역할을 담당하고 날마다의 뉴스는 긴급 속보를 알리는데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무음의 시대. 아무리 외쳐도 듣지 못하는 우리들은 속수무책으로 살아가고 살아간다.

    나와 상관없는 일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무심코 견뎌내며 얼마나 많은 일들을 쉽사리 보아 넘기는가.

    내가 있는 이곳이 전부이자 일부이고 처음과 끝이며, MZ세대를 지나 알파세대로 이어지고 지금은, 그야말로 우리들은 말을 잃어버린 휴머노이드 내지는 자신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으로 컴퓨터화된 노마드. 아날로그적인 느림의 미학과 레트로의 감성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은 급물결처럼 흘러갈 것이다. 지난 크리스마스쯤인가 어금니 하나를 빼내고 솜뭉치를 한입 물고 층계를 내려가는데 뭔가 뻥 뚫려 자꾸만 헛발이 내디뎌졌다. 뿌리 하나를 뽑아내고 자꾸만 휘청거렸던 겨울이었다.

    세상이 보기 좋고 편리해지는 만큼 그 변화의 값을 단단히 치르는 것이 삶인 것 같다.

    뼈 이식을 해야만 치아 임플란트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상악관 빈 공간의 잇몸에 뼈 이식을 한다고 했다. 말만 들어도 오싹했다. 수술 날짜가 잡히고 수술실은 섹션과 드릴과 망치로 두들기고 부수고 얼굴 전면을 의료진에게 맡기고 나는 바들바들 떨었다. 마취가 깨어나면 몹시 아플 거라고 했지만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생살을 뚫어서 인공 뼈를 삽입하고 꿰매었으니, 신경이 살아나는 순간 모든 세포가 요동을 쳤다. 잇몸이 욱신거리기 시작했고 걷잡을 수 없는 통증이 왔다. 누웠다가 앉았다가 거실을 데굴데굴 구르다가 피는 멈추지 않고 숨도 못 쉴 정도의 진통이었다. 왼쪽 볼은 열감으로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응급실까지 가는 소동을 벌이고 말았다.

    섞이는 것이 이렇게나 복잡하고도 고통스러운 것이었구나. 왼쪽 얼굴은 퉁퉁 부은 채로 사람의 형상이 아닌 채로 견디고 견뎠다. 오른쪽과 왼쪽이 대칭되어질 때까지 우리는 견디고 견뎌내야 할 것이다. 문학 역시 시간과 공간의 안과 밖을 무수히 오가며 빠져나간 것들을 채우며 오래오래 버티는 힘이 아닐까. 그것이 시(詩)의 진심이며 시간과 공간의 의사소통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학은 안락한 것이 아니며 고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시착된 텅 빈 공간에 색다른 공간이 필요했던 때가 있었다.

    그 지점이 나를 살리는 시적 공간이었으며 시작이었다. 내 시적 자아가 어설프지 않게 뿌리를 내려주어서 고마운 시간이다. 시로써 절망하고 시로써 살아 숨 쉬며 참 것을 채워가는 지금이 좋다. 홀로 줄기로 자라는 법을 배우며 물밑의 바닥을 치고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비로소 보이던 그 지점에 나는 서 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유승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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