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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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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마음을 모으는 예술의 힘- 정인숙(경남오페라단 총감독)

  • 기사입력 : 2023-07-19 19: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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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Acropolis) 정상에 오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빛나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유네스코 엠블럼이 될 정도로 유명한 이 대리석 건축물을 실제 마주하면 경이로울 정도로 황홀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마음이 끌렸던 곳은 파르테논 남쪽 산기슭 아래 위치한 ‘디오니소스 극장’이었다.

    기원전 6세기 만들어진 디오니소스 극장은 인류 최초의 극장이자 최초의 연극이 만들어진 곳으로 무대공연예술의 역사가 시작된 공간이다. 지금은 많이 훼손됐지만 당시 약 1만7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대규모 공연장으로 매년 디오니소스 축제가 개최되었다. 며칠간 계속된 이 축제의 메인 행사는 비극경연대회였다. 포도주와 농경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기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합창하거나 춤을 췄던 디티람브(Dithyramb)에서 유래한 이 축제는 도시국가 아테네의 참주였던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해 국가적인 행사로 자리 잡으며 아테나와 지중해 연안 식민도시와 결속을 다지는 축제로 거듭났다.

    축제를 주관했던 최고 집행관 아르콘(Archon)은 경연에 참여할 극작가와 후원자들을 선정했고, 극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질 수 있도록 지원을 받았다. 주역 배우는 물론 아테네 시민으로 선발된 합창단 코로스(Choros)의 무대장치, 가면, 의상 등 공연 제작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코레고스(Choregos)로 불렸던 후원자가 부담했다. 아테네의 부유층이었던 이들은 코로스의 책임자 코레고스가 되는 것을 매우 명예롭게 여기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놀랍게도 2500년 전 디오니소스 축제의 운영방식은 행정기관이 시스템을 만들어 기업과 예술가를 매개하고, 기업은 지역사회에 이윤을 환원하며, 예술가는 시민에게 감동의 무대를 선사하는 현대 예술경영의 개념과 거의 흡사하다. 예술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아테네는 시민들을 공연장으로 모이게 했고, 심사위원으로 관객으로 참여한 시민들은 그곳에서 비극을 관람하며 민주주의의 가치인 경청, 배려, 관용을 배웠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의 공연은 이제 없지만 시민의 마음을 모으고 공감했던 예술의 위대함은 그곳에 여전히 남아있다.

    정인숙(경남오페라단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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