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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그사세’를 위하여- 김수환(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23-07-13 19: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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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 말과 7월 초, 프랑스 전역에서 거친 시위가 벌어졌는데 알제리계의 한 소년이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이 발단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를 프랑스 사회가 알면서도 방치한 구조적 차별에 대한 유색인종, 이민자, 빈민 등 약자들의 울분이 폭발한 것으로 분석하였다. 프랑스인들이 자랑한 자유·평등·박애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백인들만이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는 현실을 이번 시위가 폭로한 셈이 되었다.

    말하자면 교육과 문화의 혜택이 프랑스 사회 주류에게 편중되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한쪽은 권력의 핵심 세력들이 자기들이 하는 일은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한 애국적인 일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쪽은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며 결과가 정의롭다’고 외치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저들이 사는 세상에 대해서는 그랬는지 몰라도 그 영역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꼭 그러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일전에 길을 가다가 한적한 길가의 작은 사무실 앞에 ‘00 건강동우회 회원 구함’이라고 적힌 작은 플래카드가 자꾸 마음에 걸린 적이 있다. 건강을 챙기는 데도 동우회가 필요하구나, 그래 뭐 혼자보다 같이하면 더 좋기는 하겠네, 거기까지만 하면 되는데 청승맞게도 생각은 더 나간다.

    건강을 위해 모이는 사람들은 건강한 사람들인가 아픈 사람들인가, 건강은 핑계고 자기 편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쓸쓸해서 모이려는 것인가, 하나 남은 희망, 기댈 데라고는 이제 건강뿐인 사람들인가, 그러면 고독 동우회, 슬픔 동우회, 그리움 동우회 같은 것도 생길 수도 있겠다 등등.

    미국 프로야구에 메이저 리그, 마이너 리그가 있고 마이너 리그는 또 트리플A, 더블A, 싱글A가 있고 그 아래에도 더 많은 마이너들의 세상이 있다. 그뿐이겠는가.

    사회와 사회,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따른 편 가르기와 물질이나 직위를 잣대로 남들과의 구분을 짓는 일이 보기에도 안 좋고 인간적이지도 못한 것 같아 그런 일을 하는 건 좋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몇 층의 리그와 몇 가지의 모임에 속해 있고, 그것에 많은 공을 들인다.

    방탄소년단의 아미와 같은 수많은 오빠부대, 과거 노사모에서 시작되고 그 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형성된 팬덤정치도 그렇고 새마을운동회와 같은 사회 봉사단체나, 각급 동창회, 수많은 계모임 등등의 ‘그사세’에 속해서 시간과 돈을 들여서 즐겁게 놀기도 하고 일상의 보람과 존재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그저 순수할 것으로만 여기는 문학판에도 수많은 동우회, 동인들이 있는데 저들 간에도 ‘노는 물’이 다른 계급이 있는지 매우 배타적이고 권위적인 이들도 더러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사람들이 홀로 고립되기보다는 더 많은 ‘그사세’를 가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이너면 어떤가, 누군가 메이저리거라면 그의 인생이 메이저이고 그의 인격이 메이저인가. 그런 세상의 잣대는 버리되, 다만 저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와는 완전히 다르게 ‘그사세’를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바꾸어 내 인생의 자유와 가치를 높이는 데 공을 들이는 일이 훨씬 더 지혜로운 일이 아닌가 싶다.

    김수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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