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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24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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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다육이에 빠져 사는 농부 이정립씨

10여년 만에 ‘다육이’ 작품으로 키워 전국 마니아 사로잡았다

  • 기사입력 : 2023-07-12 21: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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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시의 북쪽 관문으로 밀양시와 경계지점인 생림면 마사리는 김해에서 볼거리, 즐길거리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우선, 탁 트인 낙동강 변에 위치한 김해낙동강레일파크는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2021년 경남도 비대면 안심 관광지에 선정될 만큼 김해의 대표 관광시설이다.

    경전선 폐선부지 일대에 조성해 옛 낙동강 철교 1.5㎞(왕복 3㎞)를 활용한 레일바이크뿐만 아니라 와인동굴, 철교전망대, 열차카페 등으로 구성돼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또 인근에는 3만8000㎡ 부지에 93개 캠핑사이트 규모의 생림오토캠핑장을 비롯해 다양한 미술작품이 설치된 마사1구 보물찾기마을이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정립씨가 생림다육에서 금다육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립씨가 생림다육에서 금다육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곳 마사리에는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국의 다육이(다육식물) 마니아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다육이 재배농부가 있다. 마사리 북곡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 다육이를 재배하고 있는 이정립(68)씨가 주인공이다.

    지난 6일 한낮 기온이 34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이씨의 다육이 재배농장(생림다육)의 문을 열자 330여㎡의 하우스 안에 족히 1000여 개가 넘는 다육이가 눈에 들어왔다. 다육이에 문외한인 기자의 눈에 비친 다육이는 처음에는 그냥 일반 선인장 같은 느낌밖에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씨로부터 다육이에 대해 설명을 한참 듣고 다시 돌아보니 다육이 속에서 우주가 보이는 것 같았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의 구절처럼 다육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자 다육이는 그냥 다육식물이 아니라 의미 있는 생명체로 다가온 것이다.


    1955년 김해 생림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과수원 일 돕다 딸기농사·가축 농장 운영

    이후 부산서 직장생활하다 춘란에 빠져
    1996년 부산 대저에 하우스 짓고 농원

    2008년 대저 난원 접고 고향에 난원 조성
    2012년 무렵부터는 다육이 재배 시작


    이씨는 1955년 마사리 북곡마을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자랐다고 한다. 평범한 10대 시절을 보내고 군대를 다녀온 뒤에 부친이 하던 논·밭 농사와 과수원 일을 거들다가 직접 딸기농사를 하면서 농사에 재주가 있음을 알게 된다. 몇 년 정도 딸기 하우스를 했는데, 종자 개량 등을 통해 비슷한 규모의 다른 딸기 재배 농가에 비해 매출을 3배 정도 올린 것은 물론 딸기 종자도 팔아 꽤 큰 수익을 올렸다. 그때 번 돈으로 20대 후반에는 소와 돼지 농장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너무 힘들어 몇 년 하다 접었다.

    이후 부산으로 내려가 오랫동안 직장을 다녔다. 이 시절 이씨는 춘란에 빠져들게 된다. 아내가 식당을 했는데, 식당에서 어느날 지인으로부터 춘란(관음소심)을 하나 선물받고 매일 쳐다보다 보니 빠져들게 됐다고 한다. 이후 집 안에 난을 키우는 것은 물론 주말과 휴일이면 인근 산으로 난을 찾으러 다녔다. 그는 난이 그냥 좋았다고 한다. 보면 볼수록 신비스러워 나중에는 난을 숭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마침내 1996년 부산시 강서구 대저에 땅을 구입해 하우스를 짓고 본격적으로 난을 재배하게 된다. 330여㎡ 크기의 농원 이름도 고향 이름인 생림난원으로 지었다. 난원을 만들어 난과 함께 생활한 10여년 그는 매우 행복하고 보람 있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좋아하는 난을 키우고 가꾸는 기쁨에다 나름대로 수익도 올려 가족의 생계에 많이 보탬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난 중에서도 엽예품(葉藝品·난잎에 여러 가지 색상의 변화가 나타나 잎에 무늬를 이루는 품종으로 ‘잎무늬종’이라고도 함)을 좋아해 자신의 난원에서 많이 재배했다.

    부산 대저의 난원이 한창 잘되던 2008년 이씨는 고향 생림 마사리로 돌아온다.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이가 쉰이 넘어가자 고향에서 살고 싶었다. 대저의 난원을 접고 생림에 난원을 조성했다. 이곳에서 2~3년 춘란을 가꾸던 이씨는 2012년 무렵부터 다육이를 재배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생림다육’이라는 다육이 재배 하우스까지 만들었고, 그때까지 그토록 아끼던 500여 개의 난은 근처 난 농원에 맡겼다. 물론 지금도 가끔씩 난 농원을 찾아 자식같은 난들이 잘 있는지 살피고 있다.

    20년 가까이 난에 빠져 있던 그가 어떻게 다육이에게 심취하게 됐을까. “부산의 난 가게 옆에 어느날 다육이를 판매하는 가게가 들어섰습니다. 처음에는 난에 비해 멋도 풍류도 없고 해서 관심이 없었는데, 매일매일 눈에 띄다 보니 관심이 생겼고 유심히 살펴보니 애정이 생겼습니다. 다육이는 난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식물이었습니다.”


    1000개 넘는 금다육이 정성으로 키워
    ‘생림다육’ 국내 ‘금다육이 농장 1호’ 자부

    최근 문 연 갤러리와 조성 중인 정원 근처
    다육이·난 옮겨와 관광명소 만드는 게 꿈


    이씨는 난 중에서 엽예품을 좋아했듯이 다육이 중에서도 무늬가 들어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무늬가 들어있는 다육이 중에서도 금(金)무늬가 있는 금다육이를 많이 키운다. 그래서 그의 생림다육에 있는 다육이는 전부 금다육이이다. 이씨는 스스로 ‘생림다육’이 우리나라 금다육이 농장 1호라고 자랑한다.

    특히 그는 창(槍) 모양의 금 무늬가 있는 ‘창금 다육이’를 좋아하는데, 그가 자체적으로 개량·재배한 창금 다육이 ‘킹 스피어(king spear)’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는 킹 스피어가 국내 다육이 제품 가운데 최고 중 하나로 손꼽힌다면서 이는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킹 스피어에서 복제한 종자(새끼)는 원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있지만 없어서 주지 못한다고 했다. 다육이는 복제하기도 힘들지만 복제하더라도 똑같이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킹 스피어 외에도 자신이 키운 금 다육이 ‘마리포사’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씨가 가장 아끼는 창금다육이 ‘킹 스피어’.
    이씨가 가장 아끼는 창금다육이 ‘킹 스피어’.
    이 씨의 작품 금 다육이 마리포사.
    이 씨의 작품 금 다육이 마리포사.

    이씨가 10여년 만에 최정상급의 다육이를 키워낸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다육이 재배 이전에 딸기를 재배하고 난을 키우면서 종자개량에 남다른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하고 반문했다. 그의 말대로 딸기 하우스를 하면서 종자개량을 통해 매출 신장을 경험한데다 난을 키우면서 어느 누구 못지않게 좋은 난을 복제·재배해봤기 때문에 다육이도 멋진 작품으로 키우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유추된다. 그는 “좋은 다육이를 구입해서 정성으로 키우다 보니 멋진 작품이 나왔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는 다육이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다육이에게는 우주의 코스모스(질서 또는 조화)가 보이기도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공기정화활동을 하기 때문에 가정에서 관상용으로 키우기에는 최적의 식물이라고 자랑했다.

    이씨의 다육이에 대한 사랑은 대를 이어 그의 작은아들(40)도 2㎞ 정도 떨어진 생림면 생철리에서 농원을 만들어 다육이를 재배하고 있다.

    그는 최근 들어 농원과 1㎞ 떨어진 마사리 송촌마을에 하우스형 갤러리를 열었다. 이곳에는 수령이 오래된 나무로 만든 테이블과 도자기, 그림 등이 전시돼 있다. 목재 테이블은 그가 직접 구입하고 건조·제재한 나무를 장인들이 가공한 작품이고 도자기는 김해의 대표적 도자 작품인 분청과 백자가 대부분이다. 또 갤러리 앞에는 소나무와 모과나무, 회화나무, 돌배나무, 향나무 등 정원수와 야생화 분재 100그루 가까이가 있는 정원 생목원(生木園)이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씨가 최근 문을 연 하우스형 갤러리.
    이씨가 최근 문을 연 하우스형 갤러리.

    이씨의 꿈은 최근에 문을 연 갤러리와 한창 조성되고 있는 정원 근처에 다육이와 난 농원을 옮겨와 작은 관광명소를 만드는 것이다. 생림다육에서 나오는 길, 뒤편으로 낙동강레일바이크에 노을이 걸려 있었다.

    글·사진= 이종구 기자 jg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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