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1일 (수)
전체메뉴

[작가칼럼] 시간 여행- 유영주(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23-07-06 19:36:51
  •   

  • 나는 PC통신 세대다. 하이텔, 천리안이 한창이던 시절, 지방에서는 개인이 사설 BBS를 만들어 운영하던 통신망이 있었다. 그곳에 쥐띠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앙쥐의 미소’라는 모임이 탄생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삐비-뚜루루!”하는 모뎀 연결음과 함께 나타난 파란 화면 속 글 메뉴들은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신세계였다.

    우리는 그 신세계에서 자주 밤을 지새웠다. 하찮고 시시콜콜한 질문 하나에도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수십 개의 댓글이 동시에 올라오고, 누군가는 자료를 찾아 공유해 주었다. 다수가 궁금해하는 물음에 0.01초 만에 답이 튀어나올 때의 짜릿함을 지금도 기억한다.

    파란 화면 속 한줄 한줄에 담긴 대화는 샘물처럼 맑고 신선했다. 뭐가 그렇게 재미났는지 우린 밤새 키득거리고, 새로운 소식엔 환호했다. 나는 소프트웨어 새 버전이 출시된다는 소식도 PC 통신망을 통해 손 빠르게 접했다. 한번은 소프트웨어 신제품 출시 행사장에서 그 당시 고가이던 한글 2.1을 추첨경품으로 받기도 했다. 플로피디스크 13장으로 이루어진 최신 버전(?)은 해마다 새 버전에 밀려 구닥다리가 되어갔지만, 나는 이십 년이 넘도록 책장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꽂아놓고 흐뭇해했었다.

    그렇게 신문물을 즐기던 우리의 20대는 쏜살같이 흘러갔다. 그사이 PC통신은 나날이 발전했고, 인터넷이 개통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졌다. 싸이월드에서 카카오스토리, 페북, 인스타로 진화하는 동안 새로운 소통방식엔 시들해져 갔다. SNS를 가장 활발하게 할만한 친구들이 손가락도 까딱하기 귀찮다는 듯 살고 있다.

    그땐 세상과 소통할 길이 PC통신뿐이었지만, 지금은 피곤할 정도로 많은 까닭이다. 유튜브, 틱톡에선 온갖 동영상이 홍수처럼 터져 나온다. 덕분에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이도 적지 않다.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함)인데 어쩔 도리가 없다.

    한 달쯤 전 간간이 서로의 안부를 전하던 단톡방에서 우리 모임 30주년 기념일이 일요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전국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오랜만에 날을 잡았다.

    다들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고 설레는 마음이 가는 길을 재촉했다.

    호텔 한식당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맙소사! 예상은 했지만 이건 상상 초월이다. 후덕해진 몸과 불룩해진 뱃살. 푸릇푸릇했던 기억 속의 친구들은 어디 가고 반 백 살 중년들이 앉아 있었다. 당뇨약을 먹는 친구가 셋이나 되었고, 어금니가 없다며 맛난 고기며 회를 내 앞으로 밀어주는 이도 있었다. 그래도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밥을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하는 사이 두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30년 만의 짧은 만남이 아쉬워 차를 마시고 나오는데 누군가 하는 말. “10년 뒤에 보자!”, “야, 그땐 우리 60이다!”, “하하! 그래, 다들 얼굴 보려면 건강 잘 돌보길.”

    까르르 웃으며 헤어지는데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짠해 온다.

    기차 시간이 여유로운 한 친구와 바닷길 산책을 했다. 친구는 20대로 시간 여행을 온 기분이라며 활짝 웃고는 기차역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또다시 단톡방은 쥐죽은 듯 조용하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우리는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중이니까.

    유영주(동화작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