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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그녀의 흰 그림자- 주향숙(시인)

  • 기사입력 : 2023-06-29 19: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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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런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동주의 시를 간직했다가 세상에 알려 줄 수 있게 한 일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형’ 중에서

    며칠 전 의령 문우들과 광양 망덕포구에 있는 ‘정병욱 가옥’을 다녀왔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가 국문학자 정병욱 선생과 가족의 정성으로 이 가옥에서 보존되었다. 윤동주는 1940년 정병욱이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뻐꾸기의 전설’을 읽고, 연희전문학교 두 해 후배인 그의 기숙사로 찾아가 처음 만났다. 정병욱은 이미 1939년에 조선일보에 발표한 윤동주의 시와 산문을 읽고 그를 흠모하고 있었다. 이후 북아현동 등지에서 함께 하숙했다. 윤동주는 1941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출간하려 하였으나 일제의 강압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육필시고 3부를 작성하여 정병욱에게 그중 1부를 증정했다. 1944년 징병으로 끌려가게 된 정병욱은 윤동주의 시고를 어머니께 맡겼고, 그 어머니는 명주 보자기로 겹겹이 싼 그것을 항아리에 넣어 마룻바닥 아래에 간직했다. 정병욱은 후일 자신의 호를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의 한자 말인 ‘백영(白影)’으로 지었다.

    내게도 이 비슷한 친구가 있었다. ‘진’이었다. 진과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함께였다. 학교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붙어 있었다. 다른 친구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고,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영혼의 단짝이었다.

    매점 가는 길에 아름드리 목련 나무가 있었다. 4월이면 하얀 꽃이 피었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와 생각하기를 즐겼던 나는 나무 그늘에 해먹을 걸고 꿈꾸듯 바람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그러고는 구름 위로, 바닷속으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었다. 우리의 우정이 특별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생각이 남들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었다. 진은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고, 욕심이 없었다. 나는 진이 스님이거나 아니면 수녀가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했다.

    항상 자립을 꿈꾸었던 진은 서울로 갔고, 나는 그러지 못했다. 진은 서울 변두리에서 자취하며 고생을 참 많이도 했다. 연탄 살 돈이 없어 겨울이면 얼음장 같은 방에서 지내고 찬물로 머리를 감는다고 했다. 그러나 굳은 식빵을 뜯으며 파리를 꿈꾸었고, 그 시절 진은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서른까지만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여고 졸업 후 십 년 만이던가. 의령에서 학원을 하며 막 결혼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진이 나를 찾아왔다. 진과 나는 밤새 내린 하얀 눈처럼 소복이 쌓인 이야기보따리를 풀었고, 하루를 더 머물고 진은 주저주저 못다 한 이야기를 남기고 완행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는 진에게 나는 5만원을 쥐여주었다. 진은 무어라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때 진이 차마 꺼내지 못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묻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다. 각자 사는 길이 달랐고 처지가 달랐다. 오래오래 보고 싶은 친구였으나 나는 잊어버렸다. 지는 꽃잎처럼 색이 바래 버렸다.

    사람의 사귐이 동주와 병욱 같다면. 너를 믿고 나의 전부를 내어줄 수 있고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지키는 친구가 있다면. 세상은 동주의 별처럼 반짝이겠지. 아무리 아픈 생일지라도 견딜만할 것이다.

    잃어버린 진을 찾아볼 생각이다.

    주향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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