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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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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아이들이 안전할 권리- 하경준(경남연구원 연구위원)

  • 기사입력 : 2023-06-27 19: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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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에서 안전사고와 관련된 기사를 접할 때 항상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다. 특히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은 연구자의 입장보다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더욱 가슴이 아린다.

    지난 4월 부산 영도구에서 발생한 등굣길 참사,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스쿨존 내 음주운전으로 인한 어린이 사망 사고 등 날벼락 같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 놀이터 그네에 깔려 사망하는 사건 등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우리 사회에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의 안전 수준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 한 해 14세 이하 아동 안전사고 사망자 수는 139명으로, 인구 10만 명당 2.2명에 해당한다. 2000년 기준 14.4명에 비하면 큰 폭으로 감소한 추세이나 노르웨이(1.1명)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1995년 어린이보호구역 도입, 2003년 아동안전종합대책 수립, 2020년 어린이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 및 제1차 어린이안전 종합계획 수립 등 정책적인 노력으로 사고율을 낮춰왔다. 그러나 관련 대책을 면면히 살펴보면 지엽적이고 단기적이다. 어린이 사고율 제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1928년 미국 뉴저지주에 위치한 래드번(Radburn)에 적용된 도시설계 기법은 어린이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으로서 시사점이 크다.

    미국 도시건축가 클라렌스 스타인(Clarence Stein), 헨리 라이트(Henry Wright)에 의해 설계된 도시 래드번은 당시 차량 중심의 미국 도시개발 행태의 대안적 도시설계 기법을 고안하여 래드번에 적용했다. 이들은 래드번 설계 원칙으로 ‘자동차와 보행자 분리’, ‘주거지 내 차량 통행 불허’, ‘단지 내 학교, 공원 등은 도보로 연결’ 등을 내세웠다.

    차량은 개별 주택 차고지까지만 진입이 가능하도록 막다른 길을 만들고 주거지 내를 통행할 수 없으며, 주택 뒷마당을 잇는 보행 공간을 통해 학교까지 차량을 만나지 않고 이동이 가능하다. 이렇게 고안된 도시설계 기법을 ‘쿨데삭(Cul-de-sac)’이라 부르며, 100년이 지난 지금도 도시설계 교과서에 인용된다.

    한국의 도시설계는 어떠한가. 도시를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격자 형태의 도로망부터 긋는다. 도로로 둘러싸인 네모반듯한 토지에는 아파트가 들어오고 학교가 위치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버리는 토지 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토지를 활용하는 방법이자 차량이 중심이 되는 계획이다.

    여기서부터 근본적인 시각을 바꿔야 한다. 도로로 둘러싸인 토지는 4면이 차량과 접한다. 그만큼 사고의 발생 빈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경제성보다 미래 우리의 자산인 아이들의 소중한 생명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도시의 밑그림부터 바꿔야 한다.

    최근 지상에 차 없는 단지를 조성하는 아파트가 늘고 있다. 나아가 아이들이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을 오고 가는 길에 한 번도 차량을 만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강력한 도시설계 기법과 법안이 필요하다. 기존 도시는 우선적으로 위험 지역을 선별하여 차량과 보도를 분리시키는 입체적인 계획을 실시해야 한다.

    아이들의 죽음에는 자의가 없다. ‘너희들이 조심했어야지’라는 무책임한 말로 사회의 책임을 아이들에게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 어린이가 안전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 모두의 의무다. 말도 안 되는 사고로 소중한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아이들을 지켜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미래에 대한 투자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다양한 노력 중 아이들의 안전이 가장 중요한 미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마음 놓고 뛰어놀아라.’

    하경준(경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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