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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분당 가는 길- 유승영(시인)

  • 기사입력 : 2023-06-22 19:2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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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에게 가는 길은 멀고도 길다. 진주에서 광명까지 KTX를 타고 광명에서 분당 가는 좌석버스를 타면 된다. 사는 곳을 벗어 나는 일은 참 버겁고도 낯선 일이다. 진주라 천리길. 멀리 있다는 핑계로 엄마에게 자주 가지 못해 늘 마음이 무겁고 죄송하다.

    엄마가 혼자 지내신 지 30년이 넘었다. 딸 넷을 키워 내시고 시집을 보내고 엄마는 경기도 분당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팔순 노모는 서른넷에 혼자가 되어 험한 세상을 맨몸으로 헤쳐나오신 분이다. 철부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추위에 떨지 않게 키우셨다. 유독 몸이 허약한 나는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랐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허약한 나에게 밥을 떠 먹이셨던 것 같다. 초저녁 잠이 드는 아이에게 밥 한 숟가락을 먹이려고, 이거 먹어야 내일 아침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 품을 떠난 지 30여년. 가장 멀리 있어서 늘 보고 싶어 하는 딸이다. 긴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주고 땋아주고 빗어 주시던 엄마였다. 엄마의 화장대 선반 위에 지금도 사 놓으시는 예쁜 머리핀과 예쁜 머리 방울. 누구도 그 사랑을 질투하지 못한다. 비실비실 쓰러질 듯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넘어질까 업어서 등하교를 시켰던 엄마. 내 곁에 오래오래 있을 것만 같은데 엄마는 자꾸만 가볍고 가벼워진다. 그런 엄마가 나는 좋아서 우리 집에 가끔씩 모시고 온다.

    몇 해 전 겨울이었다. 기차에 태워 좌석에 앉혀 드리고 내려 오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 건지. 새벽에 기차에서 내려야 하니 양말을 두 겹으로 신겨드리고 짐은 최대한 줄여서 내리기 편하게 선반에 올려두었다. 몇 번이나 당부를 하고 기차 창 밖에서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서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싶어 하다가 그렇게 이별을 하는 거겠지.

    아픈 엄마를 보면 내가 보이고 나를 보면 엄마가 보인다. 힘주어 사랑하다가 서로를 외면하다가 우리는 다 사랑하지 못하고 떠나겠지. 그래서 자꾸만 눈에 밟히는 거겠지.

    엄마는 구부정한 몸으로 자꾸만 왔다 갔다 하면서 냉동실 문을 열고 닫는다. 오랜만에 온 딸에게 뭔가 먹이고 싶은 건지 닭 한 마리를 꺼내신다. 그리고는 다시 눕는다. 내 몸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생각으로는 뭐든지 다 할 것 같은데 뼈도 가늘어지고 근육이란 근육은 다 없어지고 말이야. 앙상한 손과 발, 더 앙상한 팔과 다리를 하고는 자꾸만 일어섰다 앉았다 하는 엄마. 엄마는 늙지 않을 것 같았는데. 툭툭 말을 내던지고 문을 꽝꽝 닫았던 사춘기의 내가 있었다. 나는 엄마의 무거운 어깨였다. 저녁엔 뭐 먹을래? 만두 쪄줄까?

    진주행 버스를 탔다. 이틀을 엄마와 보내고 얇고 작아진 엄마를 두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베르테르를 노래한 괴테의 맑은 마음을 순환하고 싶은 밤이다. 엄마가 접어준 종이학을 물끄러미 본다. 그 얇고 가는 손가락으로 힘을 줘서 접었을 종이학.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는데 엄마는 때맞춰 전화를 걸어왔다. 저물어 가는 밤하늘의 별이여, 그대는 아름답게 서쪽에서 반짝이고, 구름 사이로 엄숙하게 그대의 언덕을 지나가는구나. 그대는 황야를 향하여 대체 무엇을 구하는가.〈괴테〉.

    폭신한 엄마를 안을 때까지도 몰랐던 종이학 700마리. 이 큰 사랑을 어쩌란 말이냐.

    유승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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