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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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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독립단편영화를 통해 본 우리의 모습- 이수석(대한물류산업기계 대표)

  • 기사입력 : 2023-06-19 19: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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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월 지인의 초대로 제40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를 처음 관람하게 되었다. 아내와 함께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제를 관람하기 위해 부산 도심으로 향했던 그날, 생각지 못할 만큼 인상 깊었던 영화가 있어 소개한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오스트리아 작품인 ‘근무 중 이상무(Hardly Working)’라는 작품은 비디오게임 속 Non-player Character(NPC)를 다루고 있다. 목수, 마부, 세탁부, 청소부라는 4명의 캐릭터를 중점으로 각각의 캐릭터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며, 반복되는 그들의 행동이 무의미한 행동의 반복으로 보인다. 목수는 같은 구역 안에서 같은 패턴으로 못을 박는다. 술이 덜 깬 모습으로 나타나는 마부는 이미 채워진 말의 물통에 또다시 물을 채워 넣는 무의미한 행동을 보여준다. 청소부는 아주 좁은 구역의 한 스팟만 집중적으로 청소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그곳은 항상 먼지로 가득하다. 세탁부는 흙투성이 바닥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는 비디오게임 속의 주변인인 Non-player Character의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노동을 보여주는 단순한 영상 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했다. 이 영화는 ‘근무 중 이상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영어 원제목을 직역하자면 ‘거의 일하지 않는’이라고 해석될 것이다. 이처럼 이 영화에 등장하는 NPC들은 계속해서 행동을 반복하며 노동을 하지만 그들의 노동의 성과는 확연히 드러나거나 그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일을 하고 있지만 일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를 무한 반복할 뿐이다. 감독은 자본주의 사회 속 노동을 반영했다고 한다.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그 속에서 노동을 제공하는 우리들의 모습 또한 이 NPC들처럼 무의미한 반복일 뿐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영화였다.

    자본주의 경제의 장점은 경제활동의 자유가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마음대로 직업을 선택하고, 원하는 것을 소비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력과 재능의 결합으로 경제가 성장하고 산출물이 늘어나면 모두에게 이익이 더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가.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재능에 노력을 더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계층을 뛰어 넘으려 노력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주어진 여건에서 직업은 돈을 버는 수단일 뿐이며 소비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사회 여기저기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소비를 자극하는 환경이 너무나 많은 세상에선 소비가 마치 경제활동의 맹목적인 목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소비를 위한 공급원으로서 직업을 여긴다면 과연 노동을 하는 동안 행복함을 느낄 수 있을까. 물론 소비에 필요한 돈을 얻는 성취감에서 오는 행복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 NPC들처럼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노동일 뿐 그들은 노동의 성과도 더 많은 성과를 위한 변화나 노력도 불필요하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저 약속된 시간 동안 노동을 제공하고 눈에 띄지 않는 캐릭터들처럼 무리에 묻혀 눈에 띄지 않기만을 바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 하루가 무사히 지나감에 안도감을 느끼고 그다음 날도 그러한 날의 반복이 계속되기를 바라지는 않을까.

    우리가 태어나 사회에 속하는 존재가 되는 순간부터 환경 속에서 주어지는 역할은 매우 다양할 수 있다. 누군가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조연이 될 수도, 누군가는 단역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든 의미 없는 역할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의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확고히 한다면 우리가 살아내는 인생이라는 영화 속에서 가장 큰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수석(대한물류산업기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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