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1일 (수)
전체메뉴

[작가칼럼] 이사와 꼰대 사이- 유영주(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23-06-08 19:33:59
  •   

  • 올 유월은 내게 전쟁 같은 달이다. 이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여태, 주택만 살다 처음 아파트살이로 결심한 계기는 이랬다. 이 년 전 겨울 어느 밤, 대문을 들어서는데 어디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더니. 비어 있던 아래층 셋방 수도꼭지가 터져 거실 바닥이 한강이었다. 오밤중에 얼음장 같은 바닥 물을 다 훔치고 나니 손도 얼고 정신도 번쩍 들었다.

    이러다 우리 집 말아먹겠구나!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하숙생 같은 우리 부부에게 주택관리는 애당초 무리였는지 모른다. 엄마가 물려주신 집이라 어찌어찌 살았는데, 이젠 옮기라는 뜻이려니 해석하고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남들은 아파트 생활이 편할 거라는데, 나는 처음이라 그런지 도통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편한 생활 뒤에 감추어진 바위산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걸까. 아파트 자금 마련하느라 골머리를 싸매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오래된 주택이라 급매로 내놓았지만 팔리기는커녕 전세도 겨우 나갔다. 집이 잘 지어졌는지 확인하는 사전점검도 처음으로 해보았다. 입주예정자 단톡방에선 날마다 백여 개의 알림이 울리는 건 기본이다. 줄눈이며 탄성코트며 낯선 단어들 천지다. 다행히 단톡방 사람들 덕분에 신세계를 하나둘 알아간다. 물론 신세계로 들어가는 덴 돈이 많이 든다는 서글픈 현실도 깨달았다.

    입주일이 다가오자,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다른 의견 하나에 금방 잠잠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오뉴월 죽순 올라오듯 걱정거리가 솟구치는 건 어쩔 수 없다. 층간 소음, 주차 시비. 뉴스에서 본 온갖 흉흉한 사건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닌다. 게다가 열일곱 해 같이 산 노령견 이사 준비까지 신경 써야 하니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남들 다 하는 이산데, 왜 그런고? 가만히 곱씹어 보니 나는 체질적으로 뭔가를 옮기는 걸 그닥 반기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사하는 것도 그렇고, 생각 또한 옮기기를 꺼리는 편이었다. 고인 물 퍼내듯 해묵은 사고는 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 문득 내가 정말 싫어하는 ‘꼰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자기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가르치려 드는 것.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아파트 생활에 나의 내면이 두려움을 느끼고 무작정 벽을 쌓았던 거다. 이런 절망스러운 일이 있나. 내가 꼰대라니! 딴에는 나 자신이 새로운 일 도전하기를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라 여겼는데. 생각해 보니 그 새로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즐긴 온갖 새로움 밑엔 나만의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있었던 거다. 어쩌다 새로운 일이 뜻하지 않게 실망을 주더라도 나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뿌리가 있다는 믿음. 그 뿌리를 잡으면 다시 편안해진다는 걸 알기에 그랬는지 모른다.

    이제 뿌리까지 옮겨야 할 때가 왔다. 깊이 박혀있던 내 모든 생각까지 송두리째 뽑아 한 번도 넘지 못한 큰 파도를 넘어야 한다. 곰팡내 나도록 꽁꽁 싸매놓고 풀지 못했던 생각과 행동, 먼지 쌓인 감정까지 훌훌 버리고 가야겠다. 나는 지금 망망대해 넘어 새 땅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꼰대 탈출, 아자!

    유영주(동화작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