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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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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더없이 유쾌한 봄날을 찬미하며- 이재수(국민연금공단 창원지사장)

  • 기사입력 : 2023-04-04 19: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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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의 끝, 봄의 시작.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기나긴 겨울도 어느덧 끝맺음했다.

    삼월 중순 어느 날부터 계절은 확실히 변했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은 따스해졌고, 반짝이는 햇빛은 포근해졌다. 어둠은 짧아졌고 세상은 점차 환하게 밝아졌다.

    자연의 흐름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이 세상 그 무엇도 영원한 건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몸소 보여준다.

    나무의 겨울나기는 처연하게 아름답다. 모진 겨울을 의연하게 버텨내고 봄이면 어김없이 새싹에 움을 틔운다. 절벽에 홀로 우뚝 솟은 소나무가 더욱 굳세고 아름답듯 고통과 절망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찬란하게 피워낸 희망이 더 단단하다.

    얽히고설킨 숙제를 풀어가려면 참고 견디고 버티어야 함을 자연에서 절로 배운다.

    결코 짧지 않은 인생, 살다 보면 전혀 바라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온갖 시련과 마주한다. 오르막 다음은 내리막이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는 깊다. 정점이 높을수록 빠르게 추락한다. 행복이 커질수록 마주한 불행은 더 쓰리다. 삶이 언제나 장밋빛으로 채색된 화려한 상승곡선일 수 없다. 열흘 붉은 꽃은 어디에도 없다. 피크아웃(peak out)은 우연 아닌 필연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어쩌다 맞닥뜨린 고통은 그냥 참아낼 수밖에. 달리 피할 도리가 없다. 당장은 견디기 힘든 참혹한 슬픔도 언젠가는 반드시 끝을 맺는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희망이 움트기 시작한다. 겨우내 추위를 뚫고 화사한 꽃을 피우는 매화처럼 말이다.

    계절은 완연한 봄을 맞았고, 길었던 코로나 시국도 서서히 끝나간다. 세상은 조만간 일상으로 완전히 복원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잔뜩 움츠린 채 아픔의 터널을 통과한다. 사소한 차이도 부정하고 조금의 다름도 용납하지 않는 ‘집단사고’에 매몰된 채.

    배려와 관용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내가 속한 공동체의 응집력만 강조한다. 추구하는 가치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좌표를 찍어 익명과 어둠의 세계에서 마구잡이로 공격한다. 팩트 체크 없이 오직 온갖 주장만 판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는 철저히 부정된다.

    ‘아서 밀러’의 희곡 ‘시련’은 미국 ‘세일럼’에서 발생한 마녀재판을 소재로 인간의 본성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소녀들은 처벌받는 게 두려워 마법에 걸린 듯 거짓으로 연기한다. 권력자는 알량한 명예를 지키려 정의를 외면한 채 궤변에 가까운 심문으로 자백을 강요한다. 농부는 토지에 대한 욕망에 눈멀어 끝없이 질투한다. 진실을 숨기고 사실을 왜곡하는 마녀사냥을 통해 인간의 억압된 욕구가 비열하게 표출된다. 마치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처럼.

    바야흐로 봄. 길고 긴 겨울을 뚫고 기어코 다시 오고야 말았다. 마냥 반갑고 고맙다. 지난해에도 어김없이 왔지만, 선뜻 맞이하지 못해 사뭇 아쉬웠다.

    고난의 끝에서 마주한 봄, 더없이 즐겁게 맞이하고 행복하게 누려야겠다. 내년에도 당연히 봄을 맞이한다는 건 지나친 오만이고 섣부른 낙관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지난 과거는 다시 돌이킬 수 없고, 오지 않은 미래는 단지 희미한 가능성일 뿐이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날씨가 차가울수록 별이 더욱 영롱하게 빛나듯 답답하고 막막한 삶에서 오히려 비약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진정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이리저리 헤맨다.

    하지만 하루하루 마주하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며, 무한히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살아야겠다. 누구에게도 미련 남기지 않고,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단지 오늘을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온전하게 제대로 살아야겠다.

    떨어진 꽃잎에 아쉬워하지 않은 채 연초록 이파리를 내미는 매화처럼.

    이재수(국민연금공단 창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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