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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고전의 힘- 윤성희(고전에세이스트)

  • 기사입력 : 2023-02-27 19: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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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는 인문학 강의를 집안에서도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유명 강사의 정리된 내용은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들은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며칠만 지나면 손가락 사이 모래가 빠져나가듯 사라지고 만다. 수동적으로 듣기만 한 정보는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휘발된다는 증거이다.

    바다를 이해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바다에 다녀온 사람에게 듣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 바다에 가 보는 것이다. 어떤 것이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 남을까. 당연히 후자이다.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읽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힘은 들겠지만 그만큼 지식의 지평은 넓어지고 기억 속에 오래 머물게 된다.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 대학의 총장 허친스 박사는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세상을 넓게 보도록 만들며 인간을 성장시킨다고 믿었다. 8년 동안 70여 명의 학자들이 443편의 고전을 엄선했으며 이 작품들은 위대한 저서(Great Books)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속에는 수천 년 동안 선인들이 심사숙고를 거듭해 만들어 낸 위대한 관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학부생들에게 위대한 저서 읽기가 적극 활용되었고 인문학적 소양의 발판을 키워 주었다. 그 결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졸업생 중 노벨상이 89명이나 배출된 것이었다. 단지 고전을 읽혔을 뿐인데 시카고 대학은 명실공히 명문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고전의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고전은 생명력을 부여받은 책이다. 역사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후세의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책이다. 묵직한 책 한 권과 마주 앉아 있으면 천천히 다가오는 귀한 지혜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류에게 항구적인 가치를 배우는 영원한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 질문하지 않고 사는 삶은 지도 없이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다고 한다.

    고전 읽기는 수많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명쾌한 해답을 보여 주진 않지만, 물음표에 답을 찾도록 잠들어 있는 이성을 작동시켜 준다. 잠들지 않는 이성을 갖는 것, 그것이 고전의 힘이다.

    윤성희(고전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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