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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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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서재- 서일옥

  • 기사입력 : 2023-01-26 0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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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들이 방을 점령군처럼 차지했다

    그들이 던져놓은 시끄러운 지식이

    자꾸만 쌓이고 있다

    부채負債처럼 쌓인다

    날마다 어둠 속에서 책들끼리 다툰다

    문을 닫아걸어도 귀를 막아보아도

    그들의 격한 논쟁이

    문틈으로 새어 나온다

    이제 버려야 하나?

    아직 두어야 하나?

    몇 번을 들었다가 도로 놓곤 하지만

    글자의 바늘에 찔려

    발목을 접질렸다


    ☞ 시인의 거처에서 서재는 어떤 의미일까. 채광이 좋고 대량의 책을 보관할 공간이 확보된 서재를 갖는 것은 문인으로서 큰 행복이다. 오늘도 우편봉투 귀퉁이에 적힌 주소를 찾아온 책, 봉투를 열어보면 시집이 들어있다. 잠시 딴 일을 하거나 차일피일 미루다보면 쌓이는 책이다. 보내온 책을 읽고 고민하는 사이 집에 쌓이는 ‘책들이 방을 점령군처럼 차지했다’고 한다. 특별한 눈길로 꼼꼼히 살펴보며 ‘그들의 격한 논쟁이 문틈으로 새어 나온다’는 책은 인생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라 책 속 말들이 맴돌고 서성이는 소리를 듣게 된다.

    개성도 생각도 다양해 세상 한편이면서 세상 전부인 작가의 세계,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모여 담소를 즐기는 서재는 작가와 비밀스럽게 만나는 장소이다. 책들끼리 마구잡이로 부딪치고 제목조차 찾기 어렵게 부채처럼 쌓여가고, 읽지 않고 버려지는 책이라 시집을 보내지 않겠다는 시인도 생겨난다. ‘몇 번을 들었다가 도로 놓곤 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밀쳐둔 책, 책의 먼지를 털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세상의 깊이를 깨닫게 하는 책에 발목이 접질리는 통증으로 오래오래 서재에 머물고 싶다. - 옥영숙(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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