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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아들이 집에서 나갔다- 김경복(경남대 교수)

  • 기사입력 : 2023-01-25 19: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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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이 분가했다. 타지에서 취업을 하고 중기청 청년 대출자금으로 오피스텔 전세를 얻어 제집을 마련했다. 직장을 잡아 집을 얻는 일은 대학생 시절에 아이가 기숙사에 머물렀던 것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제 자신의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기숙사 살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여러 세간살이를 갖추고 보니 이상한 마음이 들게 한 것이다.

    가족과 더불어 아들의 입주(入住)를 기념한답시고 분잡스럽게 방을 꾸며주며 이렇게 저렇게 살면 좋겠다고, 집이 환해서 참 좋다고, 이 집의 행운을 위해 지신을 밟아주고 있다고 말하면서 하하호호 떠들었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집 주변의 맛집을 찾아 저녁을 먹으면서 ‘야, 여기는 먹을 것도 많고 술집도 많아 보인다’고 너스레도 떨었다.

    어둠이 내린 이슥한 시간 아들을 두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짠했다. 아, 이제 아들은 완전히 우리의 품을 떠났구나! 엊그제까지 애 같던 녀석이 이제 완전한 사회인이 되어 거친 세파 속으로 홀로 걸어가게 되었구나! 싱숭생숭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쓸쓸함과 애잔함이 밀려왔다.

    문득 숫타니파타 경전에 있는 말이 떠올랐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흔들림 없이 어떤 목표를 향해 꿋꿋이 가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홀로 되어 이제 잠들 아들은 앞으로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인가! 아들은 헤어질 무렵 식구들의 이런저런 간섭에 피곤해하는 얼굴로 언제 가나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막상 본인도 혼자 되고 보니 금방 외로움을 느꼈는지 식구들이 사라져 이상하다는 전화를 하였다. 아들도 혼자되는 것에 외로움을 넘어 두려움이 왈칵 치밀었는지 모른다. 앞으로 홀로서기 위한 연습을 얼마나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혼자되는 것이 결코 슬픈 것만은 아니다. 홀로 되는 것이야말로 나의, 나만의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길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백석의 시구절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처럼 홀로 되어 제 운명을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쓸쓸하지만 생의 높고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는 길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에 조금 온기가 돌았다.

    김경복(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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