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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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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흘리는 것은 곧 놓아주는 것이다- 김경복(경남대 교수)

  • 기사입력 : 2023-01-17 19: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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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스에 아끼는 우산을 두고 내렸다는 것을 깨닫자 마음이 아파왔다. 돌아가 찾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에 치미는 당혹감! 요새 자꾸 왜 이러냐? 자주 무엇인가를 흘려버리는 일이 많아진다. 이것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일 같다.

    그러고 보면 늙어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목 근육도 느슨해져 자꾸 음식이 기도로 넘어가 캑캑대니 주변 사람 눈치가 보인다. 소변도 잦아져 자주 화장실에 가고, 가도 시원한 느낌도 들지 않는다. 무릎 관절은 어느새 시큰시큰해져와 예전처럼 몸을 활달하게 움직일 수 없다. 손의 감각도 무디어진 것인지 물건을 자꾸 떨어뜨린다.

    정신은 또 어떠한가! 머리 속에서 명사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무엇보다 같이 생활하지 않고 지내던 사람을 오랜만에 생각하면 그 이름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한참 머리를 굴려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으면, ‘에이 그 사람 이름 떠올려 무얼 해’ 하고 포기하고 마는 일이 잦다. 머릿속을 누가 지우개로 부분부분 지워버리는 것 같다. ‘정신을 단디 차리고 살아야지’ 다짐하면서 장갑도 흘리고, 목도리도 어디에 놔두고 온 것인지 생각이 안 나 낭패감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아내에게 놓쳐버린 물건을 안타깝게 말하면 위로는커녕 지청구만 듣기 일쑤다. 이럴 때 내 자신에게 심한 자책을 넘어 모멸감이 든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세상 말에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뭘까? 반성? 다짐? 아니다. 그것이 아니다. 굳이 있다면 그것은 ‘가벼워짐’ 아닐까? 내 안에 있는, 내 안에 그동안 쌓여있던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는 것인지 모른다. 알게 모르게 짓눌려 살게 했던 생의 무게를 조금씩 줄여 원래로 돌아가는 것.

    그래, 흘리는 것은 놓아주는 것이다. 방생(放生)! 내가 새로운 운명 속으로 접어들고 있듯이 내 속에 있는 것들도 새로운 운명 속으로 나아가고 싶어 내 손을 떠나는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에 조금 위로가 깃들었다.

    김경복(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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