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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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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사과의 정치학- 이준희(정치여론부장)

  • 기사입력 : 2022-11-15 19: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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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 참사’로 소중한 생명 158명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의 곁을 떠난 지 2주가 지났다. 어떻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났는지 여전히 믿기질 않는다. 많은 국민들이 같은 마음이기에 정부가 11월 5일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했지만 이후로도 추모 물결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토요일 서울에서는 궂은 날씨 속에도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고 수만명이 운집해 촛불을 들었다.

    그날 많은 인파가 모일 것으로 예견됐던 만큼 정부 당국이 안전계획을 세웠더라면, 경찰이 일찍이 질서유지에 나섰더라면, 당일 오후 6시 34분 첫 신고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기에 더욱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국민은 이토록 가슴 아파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국가의 사과와 책임 규명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하고 있는데, 대통령과 정부는 제대로 된 사과 없이 네 탓으로 일관하는 정치 공방만 벌이고 있다.

    특히 국가 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인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와 그 후 행보를 보며 몹시 답답한 심정이다. 대통령은 사고 발생 후 6일이나 지난 11월 4일 조계종 법회에서 “국민들께 죄송한 마음”이라고 때늦은 사과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윤 대통령의 이태원 참사 사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여론조사(뉴스토마토 의뢰, 8~9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58명 대상 실시, 응답률 4.0%, 오차범위 95% 신뢰수준 ±3.0%p) 결과 57.3%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고 “충분하다”는 의견은 37.4%이었다.

    진정한 사과 한 마디는 힘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관계를 개선할 수도 있다. 국민을 향한 국가지도자의 사과야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사과에 매우 인색해보인다. 이번 뿐 아니라 앞서 지난 9월 미국 방문 중 불거진 비속어 논란 이후에도 사과는 없었다. 지난해 대선 기간 중 김건희 여사의 허위이력 의혹과 관련해서도 허위이력 기재 인정 없는 사과로 논란이 일었으며, 전두환 옹호 발언 후 비난에 SNS로 유감을 표명한 데 그친데 이어 반려견에 사과를 주는 사진을 올렸다가 뭇매를 맞기도 했다.

    잘못을 인정하면 약해 보일까봐, 상대에 공격의 빌미를 줄까봐 선뜻 사과를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속마음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진정한 사과의 전형으로 꼽히는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독일을 대신해 나치의 전횡을 사과하며 무릎을 꿇었다. 사전 의도 없이 그저 헌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 한 행동이라고 한다. 그 진정 어린 사과로 유럽 내 경색된 관계는 개선됐고 독일 현대사가 새로 쓰이게 되는 계기가 됐다.

    더 나은 내일은 사과와 반성에서부터 시작된다. 윤 대통령은 국민 앞에 제대로 사과하고, 관계자에 정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말이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점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윤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부적합한 언사에 대한 사과도 필요하다.

    최고 권력자가 정치 역학관계에서 한 발짝 떨어져 단지 국민만을 바라보고 진정성을 담아 늦지 않게 사과한다면 많은 것을 바로잡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준희(정치여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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