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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남은 시간- 나순용(수필가)

  • 기사입력 : 2022-10-26 08: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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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며칠 전, 어릴 적부터 최근까지 웃음을 함께 나누던 친구가 멀리 떠났다. 그동안 병마를 잘 이겨나가고 있어 용기를 주고 응원하던 터였다. 이토록 맑고 푸른 가을 하늘로 훌쩍 날아가 버린 것이다.

    친구들은 우리 앞에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흔히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떠나는 순서는 없다’라는 말을 하지만 직접 부닥치니 너무 슬프고 실감하기 어렵다. 아직 세상에서 변하지 않은 사실은 시간은 흐르며 인간은 죽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생을 마감할 지에 대해 아는 사람 역시 없다. 지극히 당연한 진리를 늘 마음에 새기고 있기는 하지만, 다가온 충격과 고통을 감내하기는 힘들다.

    오늘 따라 화장대 앞에 붙어 있는 글귀가 눈에 아프게 박힌다. 올해 해야 할 목표들을 적어 붙여 놓은 종이다. 그중 사인펜으로 몇 번을 고치고 덮어쓴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남은시간 : 25년+5년〉. 처음에는 건강하게 활동하고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십 년이라고 생각하고 썼다. 친구에게 얘기하니 100세 시대인데 너무 짧다며 십 년을 더하란다. 또 다른 친구는 우리 부모님들이 지금 100세를 살고 있는데, 오년을 더 보태라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필자에게 95세까지 시간이 남아 있다고 적어 두었다. 이렇게 쓴 것을 매일 눈에 띄는 곳에 붙여두기는 했지만 그 나이까지 온전한 정신과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한들 따듯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쐬러 다니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는 장수일 뿐이다. 한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가지고 사회의 구성원 노릇을 할 자신이 없어서, 오 년을 깎아 꿈 같은 시간을 슬쩍 더 적어 놓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의 14% 이상이 노인 인구인 고령사회이다. 모든 국가 정책뿐 아니라 개인의 삶의 방식은 그에 맞춰 변화가 필요해졌다. 노인의 나이를 65세에서 70세로 높이자는 얘기가 나온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24시간, 365일의 날들을 어찌 허투루 낭비할 수가 있겠는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누구도 모르는데.

    나순용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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