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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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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죽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신혜영(작가·도서출판 문장 대표)

  • 기사입력 : 2022-08-31 20: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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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층에서 뛰어내려 죽으면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을까? 이리저리 잠시 머리를 굴렸다. 자연스러운 사고사로 위장된 ‘자살’이 있을까 고민했지만 답은 물음표였다. 세상을 등지고 나면 내 핸드폰을 포렌식인가 뭔가 하는 걸로 검색기록을 뒤져 볼 것 같아 위장자살, 자살보험이란 단어들은 찾아보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보험회사도 바보가 아닌데 싶어 쓸데없는 마음만 창밖으로 휙 던져 버렸다.

    세상 이렇게 살아 뭐하나 싶었다. 멍한 눈망울이 지겨워졌다. 눈 밑 다크서클엔 연어가 좋다고 했지만 연어 살 돈이 없었다. 먹고 죽을 연어도 없는데 눈가에 얹어놓으라고? 참나… 어이없다.

    사랑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그것도 정확히 삼세판 연이어 배신당하고 나니 초점이 사라졌다.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웃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미웠다. 뭣이 그리도 즐거워하하 호호 거리냐며 대들고 따지고 싶었다. 마음은 딱딱했고 얼굴은 검었다. 팔다리는 축 처지고 눈꼬리만 올라갔다. 아팠다… 아프니까 눈물만 났다. 눈물은 억울함을 데려왔다. 그렇게 울다보니 입술도 감정도 눈물도 다 말라버렸다.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아팠다.

    살 길을 찾아야했다. 우울과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가, 명상, 등산 등 등 별짓을 다 해도 그 순간뿐이었다. 그러다 바람처럼 지나가는 말에 꽂혔다. “글을 써 봐요. 잘 쓸 필요 없고요. 그냥 쓰면 돼요.” 그랬다. 누구에게 모조리 다 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 누구를 찾는 건 불가능했다. 사소한 낙서로 시작된 끄적거림은 그날의 온도와 그날의 냄새를 내 몸 밖으로 끄집어냈다. 매일 밤 나는 홀로 식탁에 앉아 어두운 마음을 이사시켰다. 눈물은 한여름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콧물은 알로에 진액처럼 내려앉았다.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벌려진 입술사이로 흘러내리는 침을 닦을 새도 없이 손가락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맞춤법도 문맥도 사건의 순서도 무시한 채 페이지 수만 꾸역꾸역 채워나가길 한 달. 먹구름 가득한 하늘빛이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흐릿하게 달빛이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작가가 되었다.

    신혜영(작가·도서출판 문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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