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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잊혀질 권리와 알 권리- 이재환(전 국민의힘 경남도당 대변인)

  • 기사입력 : 2022-07-26 20: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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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모루아’는 “인간에게 기억을 차츰 잊는 망각이 있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보화시대가 도래한 후 우리의 과거는 디지털 피부에 문신처럼 새겨지고 있다.

    ‘잊혀질 권리’는 지난 2014년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해 권리로 인정된 개념이다.

    스페인의 한 변호사가 구글 검색에서 자신의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13년 전 기사가 뜬 것을 보고, 이를 삭제해 달라고 구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유럽사법재판소는 기사가 사실이더라도 게시 목적과 달라 부적절하거나 연관성이 떨어질 경우 삭제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최근 IT기술의 발달로 몰래 카메라나 사물인터넷 등을 통한 개인정보나 사생활, 음란 사진 유출이 더 빈번해지고 있다.

    인터넷 특성상 퍼나르기와 공유가 쉽고 저장이 용이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이로 인한 피해는 회복 불가능 수준이지만 삭제를 비롯해 모든 고통은 피해자의 몫이다.

    특히 ‘몸캠피싱’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피해자는 불법촬영물을 자신의 친구, 가족 등 가까운 지인들이 보게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한다.

    이뿐 아니라 어린 시절 달았던 경솔한 댓글, 욕설 등 잊고 싶은 기록들이 삭제되지 않은 채 온라인 상에 남아 평생의 족쇄로 고통 받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잊혀질 권리’의 필요성 못지않게 악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 경우 언론의 자유는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실제 유럽 사법재판의 판결로 ‘잊혀질 권리’가 인정된 후 즉각적으로 남용 사례가 연이어 발생했다.

    재선을 노리는 전직 정치인은 재임 중 자신에게 불리한 관련 기사 링크 삭제를, 아동 성폭력 사진을 가진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한 사람은 자신의 판결 내용을 지워달라고 요구했다. 모 병원은 과거 의료사고 논란과 관련해 포털사이트의 연관 검색어를 지워 달라는 요청을 했다. 인터넷의 정보들은 개인의 정보이기도 하지만, 공공·역사적 기록물이기도 하다.

    ‘잊혀질 권리’가 개인정보나 프라이버시와는 전혀 무관하게 단순히 자신이 싫어하는 과거를 타인의 기억으로부터 삭제할 수 있거나 타인이 볼 수 없게 할 수 있는 권리로 무분별하게 확장된다면 ‘잊혀질 권리’는 ‘검열’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개인정보 보호 외에도‘표현의 자유’, ‘알 권리’라는 민주주의를 위한 공적 가치도 존재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에 ‘잊혀질 권리’의 확대는 불법으로 인한 피해 회복을 우선하면서 공익과 사적 권리와의 조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재환(전 국민의힘 경남도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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