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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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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진달래가 왔다- 김형엽

  • 기사입력 : 2022-03-24 08: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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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한 번 있는 버스 타고

    사천 용현면 구월리

    외가에 갔던 어느 봄

    외할머니 곤로불에 화전을 지져 주셨다

    마른버짐 가득한 우리를 배불리 먹이고

    몇 장은 크게 지져

    누런 봉투에 넣어주셨다


    너거 어매 갖다 주거라

    담에 어매도 같이 와야 된데이


    기름이 번진 화전 봉투를 건네면

    엄마는 수줍게 웃었다


    외할머니가 엄마를 낳은 분이 아니라는 걸

    나는 진달래와 철쭉을 겨우 분간할 무렵에야 알았던가


    세상 모든 진달래꽃은

    흙빛 종이봉투에 번진 콩기름 같은

    분홍의 그늘을 가졌다


    ☞ 다시 봄, 진달래의 계절이 왔다. “세상 모든 진달래꽃은/ 흙빛 종이봉투에 번진 콩기름 같은/ 분홍의 그늘을 가졌다” 김소월의 진달래꽃도, 신경림의 진달래도, 박노해의 진달래도 다 분홍의 그늘을 가졌다.

    나는 아직도 봄이면 아버지의 나뭇짐 위에서 한 아름 분홍의 향기를 품고 하늘거리던 진달래를 떠올립니다. “마른버짐 가득한 우리를 배불리 먹이”는 진달래꽃 화전. 우리는 화전(花煎)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진달래꽃을 생각하게 됩니다.

    진달래는 참꽃, 철쭉은 개꽃. “진달래와 철쭉을 겨우 분간할 무렵”이 되면 외가는 이제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지고 외할머니가 계시지 않은 빈집이 됩니다. 그러나 진달래꽃이 피는 봄이 오면 우리는 늘 “마른버짐 가득한” 꼬맹이로 다시 돌아가곤 하지요.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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