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열린포럼] 글씨 값- 윤영미(서예가)

  • 기사입력 : 2021-12-20 20:41:52
  •   

  • ‘적게 일하면서 적게 쓰면 된다.’ 욕심을 적게 부리면 돈도 가치가 떨어진다. 돈에 대한 욕심이 크지 못한 것은 깊숙한 곳에서 새어 나온 게으름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내 일에 몰입이 깊어서 그다지 관심이 덜했다. 어쩌면 관심 있는 것과 없는 것에 구분이 명확하다. 그래서 명품 이름은 잘 모른다. ‘샤넬’, ‘구찌’ 정도다. 그 이상은 도무지 구분이 어렵다. 사람 격과 다르게 명품을 휘두른 사람을 보면 우습다고는 늘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명품이라는 게 제법 있었다. 글씨 값을 제대로 부르지 못할 때 사람들은 그냥 받을 수 없다며 선물을 하곤 했다. 우리 사이에 돈으로 계산하기가 곤란하다 하시며 무언가를 보내왔다. 명품 가방과 명품 화장품, 명품 잔들과 명품 옷…. 글씨 값으로 집과 자동차 빼고 다 받아본 듯싶다. 그때마다 이게 무슨 브랜드냐고 물어야 했고, 그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서예가를 더 사랑해 주었다. 그렇게 글씨 값이 마음으로 오고 갔고, 성의를 생각해 몇 번을 들고 다니거나 테이블 위에 한참 동안 올려져 있었다. 역시나 불편했다. 애지중지 해줘야 했지만, 소유와 동시에 관리가 힘든 불편함으로 결국 주변으로 나누어 버렸다. 쓰지 않는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짐이고 스트레스였다. 물물교환이 글씨 값에서도 있었다.

    요즘은 글씨 값을 제대로 받는다. 몇 번의 개인전 이후 서예가의 작품에 글씨 값이 자연스럽게 매겨져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서예가의 역할이 많다. 작품으로서의 글씨뿐만 아니라 명구를 쓴 액자를 건물에 걸고, 병풍을 쓰며, 비문 글씨를 쓰기도 하고, 임용장을 쓰고, 건물 이름이나 상품명을 쓰기도 한다. 외에도 수많은 글씨 작업들이 서예가의 일상으로 들어온다. 글씨 값을 매일 흥정해야 하는 일상이다.

    글씨 작품이라는 것이 기성품처럼 값이 정해져 있지 않아 작가 나름에 따라 매겨진다. 그림은 호 당 가격이 매겨지나 이것 또한 주택의 실거래가와 공시지가가 다르듯이 그러한 경우가 많다. 글씨 값은 더 명확하지 않다. 동양 정신과 매우 흡사하다. 서예가의 인지도와 소장하고 싶은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정신적인 가격이 덤으로 매겨진다. 작가는 혹여나 돈을 밝히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게 두려워 글씨 값을 머뭇거린다. 도자기 명장 중에 그의 아내가 가격을 흥정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야만 도공은 고아(高雅)하고 순수한 예술가가 된다.

    글씨 값은 곳곳에 품격을 더해 주고,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개인의 사회적 기부이기도 하다. 언제 행복하냐고 물어올 때, 내 작업실 한가득 문방사보(文房四寶)가 넘쳐 날 때라고 말한다. 글씨를 쓰고자 할 때 아낌없이 쓸 수 있는 기쁨이 있다. 그래서 나는 글씨 값이 대부분 재료 값으로 나간다. 게으른 서예가가 열심을 부렸던 것은 하고자 할 때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가 글씨 값과 연결이 돼 있음을 알고부터였다.

    젊은 작가들의 열정 페이를 원하는 단체나 사람들을 보면 인상을 찌푸렸다. 예술가가 이슬만 먹어야 진정한 예술가 취급을 받던 시대는 끝났다. 예술가의 돈을 속물처럼 마주하는 어른을 대하면 난 그들을 퇴물로 대접한다. “예술가도 또래들과 같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입니다.”

    글씨 값이 주머니에 두둑하다고 고깃집을 예약한 남자 셋과 돌아오는 주말을 기다리고 있다. 서예가의 한턱이 어찌 그들의 배를 기름지게 불리겠는가만은! 서예가의 일생에 빙긋한 미소(微笑)와 끄덕끄덕 수긍(首肯)해 주는 곁 사람들에게 올리는 글씨 값 지출 목록이다. “불판 위에 소고기로 올려!”

    윤영미(서예가)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