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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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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염진아(변호사)

  • 기사입력 : 2021-11-03 20: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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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사법에는 대원칙이 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해석해야 하고, ‘범죄 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형사 사건의 변호인으로서, 합리적인 의심이 들고 이러한 의심스러운 점은 모두 피고인의 이익으로 해석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그중 필자가 꼽는 단연 1위는 성범죄 사건이다.

    성범죄의 특성상 목격자 없이 그 내용을 피해자와 피고인만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경우 피고인이 자신은 범행을 하지 않았다고 무죄를 주장하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피고인의 주장과 피해자의 주장이 상반되고, 상반되는 주장 중에서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 것인지는 사실 법관의 자유심증으로, 쉽게 말해 법관이 자유롭게 상황 등 증거를 보았을 때 누가 더 믿을 만한가를 판단한다는 것이다.

    오래전 사건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한다. 피고인은 유행하던 채팅 앱을 통해 한 여성을 알게 되었고, 그 여성이 남편에게서 도망치면서 아이까지 데리고 나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방을 내어주고 같이 지냈던 시기가 있었다. 그 이후에도 그 아이는 피고인을 아버지라 부르며 자주 혹은 때때로 연락을 했고, 피고인은 잠시 같이 지냈던 인연으로, 아이에게 연락이 오면 용돈을 보내 주거나, 아이 엄마에게 일부라도 금전적인 지원을 하며 지냈다. 그렇게 알고 지낸 지가 7년 여가 되었는데, 이제 초등학교 6학년가량인 아이가, 자신이 6살 때(약 6~7년전) 피고인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점에 대해, 학교 상담에서 밝혀졌다며 피고인이 갑자기 구속이 되었던 사건이었다. 피해 사실이 밝혀진 계기가 학교 상담을 통해서였기에, 피해자의 말이 일응 신뢰할 만하다는 판단으로, 피고인이 계속해서 부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구속영장은 쉽사리 결정되었다. 게다가 당시 6살이던 아이가 성인 남성에게 강간을 당했다는데 당시의 상처 등이 하나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1심에서 유죄로 판단되었으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심지어 피해자는 자신이 성범죄 피해를 당한 것이 피고인뿐 아니라, 그때 당시의 엄마의 다른 남자 친구에게도, 자신의 큰아버지에게도 피해를 당한 사실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모두 피해자가 6세 때 당했던 피해라 했다.

    이러한 사실 등을 알게 된 피고인의 가족은 피해자에게 실제로 피고인이 그러한 일을 한 것이 맞는지 다시 묻게 되었고, 피해자는 사실 엄마의 남자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중 누가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하였을 뿐 아니라, 피고인은 구속되기 며칠 전까지 피해자가 연락하여 “아빠”라고 부르며 연락했고, 피고인은 엄마에게 아이에게 주라며 용돈도 지급한 바 있었다. 피고인의 행동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바보스러워서 이유를 물었더니, 어릴 때 봤던 아이가 눈에 밟혀서라고 이야기했다.

    결국 피해자는 피고인의 항소심에서 자신이 엄마의 다른 남자 친구와 착각하여 기억을 잘못한 것 같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그리고 당시의 엄마 남자 친구들 중에서 피고인이 자신에게 가장 잘해 준 것을 인정하며, 진술 번복 서류를 작성해서 주었고, 피고인의 가족은 이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런데 피고인은 다시 한번 유죄가 선고되었다. 요지는 피해자의 진술이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한 전문가의 의견 등을 종합할 때, 피해자가 항소심에 이르러 진술을 바꾼 것은 신뢰할만하지 못하고, 피해자의 피해 주장이 믿을 만하여 피고인의 죄가 인정된다는 취지였다.

    피해자의 진술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죄가 선고된 사건을 보면서, 관연 재판부는 의심스러운 상황을 피고인의 이익으로 해석한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0명의 도둑을 놓치더라도 1명이라도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는 재판이 아닌가.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피해에 대한 정당한 처벌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형사법의 대 원칙을 지켜가며, 피고인의 억울함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는 사실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염진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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