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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0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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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흠집- 박후기

  • 기사입력 : 2021-08-05 08:19:03
  •   
  • 간이역

    이가 깨져 대문 밖에 버려진 종지에

    키 작은 풀 한 포기 들어앉았습니다

    들일 게 바람뿐인 독신,

    차고도 넉넉하게 흔들립니다

    때론,

    흠집도 집이 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종종 보았던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이가 깨져 버려진 그릇은 아직 대문 밖에서 서성입니다. 집을 떠나지 못하는 또 다른 흠의 집, 어쩌면 사는 것이 모두 흠집투성이기도 하지만요.

    처음 생긴 흠집에 우리는 벌벌 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리저리 오래 뒹굴수록 겁나고 두려울 것도 없어지게 마련이니, 흠집이 더해갈수록 살아가는 방식도 새롭게 만들어갑니다. “들일 게 바람뿐”이라니 안 그렇겠습니까? 자동차가 그렇고, 가구가 그렇고, 생선이나 과실, 꽃들도 그렇습니다. 다만, 시인은 여기에 “독신”을 꺼내 놓았습니다. 그냥 휙 읽고 넘어갈 수 없도록 쉼표가 찍혀있네요. 더더구나 그 독신의 그릇은 짜고 시큼털털한 간장이나 담는 “종지”라고 비유했습니다.

    구색을 갖추려면 종지라고 함부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한없이 낮아지고 오그라진 마음을 터전 삼아 “키 작은 풀 한 포기”가 들어앉았습니다. “차고도 넉넉하게 흔들”리는 생의 의지, 희망의 불씨입니다. 그 간절함으로 흠은 흠을 덮어가며 아슬아슬한 경계를 붙잡고 나아갑니다. -유희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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