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성산칼럼] 아버지와 6·25 참전용사- 양진석(농협 순회검사역·경영학 박사)

  • 기사입력 : 2021-05-26 20:17:26
  •   

  • 고성 남산공원에 호국참전유공자비가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 장병들과 호국 영령을 추모하고자 2005년 9월에 세워졌다. 매년 6월 6일 현충일이면 참전 유공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참배 행사를 한다.

    행사 당일 오전 10시가 되면 1분 동안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사람들은 사이렌 소리에 맞춰 묵념을 하며 추모식이 진행된다. 유가족과 참전 유공자, 기관 단체장 등은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고이 받아 들고 헌화 분향을 한다. 이들은 호국 영령의 숭고한 희생과 노고에 감사를 표했을 것이다. 여기에 2012년 8월에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도 새겨져 있다.

    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다. 지금은 전북 임실 호국원에 어머니와 함께 잠들어 계신다. 아버지는 6·25 전쟁에 나가 싸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결혼 후 신혼을 즐길 겨를 없이 전쟁터에 나가셨다. 어느 전투인지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그 당시 참혹상을 말씀해 주셨다. 어머니는 하루하루 가슴 조이며 두 손 모아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하셨다고 한다.

    이러한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는지 아버지는 무사히 제대하였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6·25 참전 유공자회 회원으로서 활동하셨다. 멋진 모자와 훈장이 달린 제복을 방에 걸어두시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아버지 장례식 때 6·25 참전 유공자회와 재향 군인회에서 조화와 많은 위로를 해 주었다. 그 때 느낀 감사함에 보답하고자 현재 나는 창원 상남동 재향군인회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나와 아들 둘까지 3대(代)가 현역 복무를 성실히 마쳤다. 아버지가 6·25 참전 용사라 군대는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라고 인식했다. 나는 대학 2년을 마치고 강원도 철원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하였다. 아들들도 강원도에서 군대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다. 아버지 세대는 어느 세대보다 정말 어려운 세월을 보냈다. 일제시대 땐 나라 잃은 서러움을, 6·25 전쟁 땐 동족상잔의 비극 등 아픈 기억을 너무나 많이 간직한 세대다. 그 동안 그분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보상이 잘 이루어 졌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했는데 왜 보상이 없을까’하고 궁금해 했다. 친척 중에 상이 용사 한 분이 계셨다. 그분은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 중 다치지 않았다면 어떤 지원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을 성인이 되어서 알았다.

    반세기가 지난 2000년에서야 참전 유공자 예우법이 통과되었다. 2002년부터 참전 명예 수당 5만원을 지원받기 시작하였다. 2008년에는 국가유공자로 포함됐지만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여러 가지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한평생 농부로 살다가 돌아가셨다. 참전 용사로서 긍지와 자부심으로 살았지만 삶은 고단했다.

    보훈교육연구원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참전용사의 87%가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령으로 인해 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얼마 전 언론에 이런 기사가 났다. ‘아픈 아내에 귤 한 봉지 사줄 돈 없어 마트에서 훔친 6.25 참전 용사 할아버지’라고. 다행히 훈방 조치 되었지만 얼마나 가슴 아픈 이야기인가. 매년 증액되어 올해 참전 명예 수당 34만원과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수당이 있지만 아직도 병사의 월급보다 못한 참전 수당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실정이다.

    6·25 참전용사는 126만9000명(2000년 국방 백서)이라고 한다. 하지만 2011년 12월말 19만8000명에서 올해 4월말 현재 생존해 계시는 분은 7만1000명이다. 매년 평균 1만2000명씩 고령으로 사망하고 있다. 전쟁이 일어난 지 어언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렸다.

    10대, 20대 그 젊은 용사들이 이제는 구십이 넘은 노인이 되었다. 단순 수치만 따지고 보면 6년 이후에는 생존해 계시는 분이 없다는 결론이다. 일부 혜택(참전 명예수당, 보훈병원 등)은 있지만 오늘의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희생 헌신한 참전 용사를 기억하고 감사와 예우를 표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생존해 계시는 참전용사들만이라도 합당한 보상과 지원이 빨리 이루어졌으면 한다.

    양진석(농협 순회검사역·경영학 박사)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