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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0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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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사르환경기자세상] 의령 ‘정암진 전투’ 승리 주역은 ‘습지’

심지홍 (진주동명고 2년)
습지와 지리적 특성 활용해 왜군 무찔러
역사적·환경적 가치 지닌 습지 보존해야

  • 기사입력 : 2020-09-23 08: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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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암진 전투는 1592년 7월 4일부터 7월 5일까지 남강 유역인 경남 의령군의 정암진에서 곽재우가 이끈 의병이 일본군과 벌인 전투이다. 정암진은 의령지방에서 부르는 지명으로 솥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이름이 비롯됐다.

    정암진 인근에는 갈대와 수풀로 덮여 있는 습지와 모래톱이 넓게 분포해 있을 뿐 아니라, 하천의 양안에도 높은 둔덕과 절벽이 있었다. 또한 남강이 범람하면서 퇴적물을 쌓아 만든 배후습지가 발달한 곳이었다. 지금은 제방을 쌓아 농경지로 개간이 됐지만 임진왜란 당시에는 질퍽한 습지였다고 전해진다.

    의령 정암진과 솥바위.
    의령 정암진과 솥바위.

    임진왜란 발발 이후 조선은 일본군에게 당시 주요 곡창지대인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중 전라도를 제외한 지역을 모두 빼앗긴 상황이었다. 따라서 전라도는 조선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곳이었으며 이에 일본군은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6군을 의령으로 이동시킨다. 이에 곽재우는 일본군을 공격하기 위해 남강 정암진 부근의 갈대밭에 의병 50여명을 매복시켰다. 음력 5월 24일 왜장 안코쿠지 에케이는 2000여명의 선봉대를 정암진 인근으로 보내 도하 지점을 골라 푯말을 세워두게 했다. 그러자 곽재우는 그날 밤 의병들에게 푯말의 위치를 늪지대로 옮겨 세워두도록 했고 이를 몰랐던 안코쿠지의 주력군은 푯말을 따라 진격했으나 결국 늪지에 빠지게 돼 미리 매복하던 곽재우의 의병에게 기습을 받아 패하게 된다.

    곽재우를 비롯한 의병들은 불과 50여명에 불과한 인력으로 2000명이 넘는 일본군 선봉을 패주시켰으며, 일본군 6군은 전라도 진출을 포기하게 된다. 또한 이 전투가 의병들의 승리로 돌아가면서 곡창지대인 호남지역을 지켜낼 수 있게 된 동시에 일본군에 대해 장기 항전을 벌일 물질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정암진 전투의 전개과정 중 습지의 특성으로 인해 일본군의 이동 능력과 전투력 등 많은 부분에 결함이 발생하게 됐고, 의병들은 갈대밭에 매복해 일본군의 눈에 덜 띌 수 있었으며, 정암진 일대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한 효율적 전투가 승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습지는 역사적으로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수많은 생물들의 서식지, 배수 처리 역할, 홍수 예방 등 생태환경으로서의 영향도 크게 차지한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약 19억1795만㎡, 즉 서울시 면적의 3.2배에 달하는 넓은 면적의 습지가 사라졌으며, 점점 그 감소 폭이 커지고 있다. 습지면적 감소의 원인은 크게 건물과 공장을 짓는 개발 사업, 바다를 막아 육지로 만드는 간척 사업, 농경지 개간 등이 있다. 지금이라도 이 행동들을 멈추고 습지보존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실정이다.

    심지홍 (진주동명고 2년)
    심지홍 (진주동명고 2년)

    한편 우리나라는 습지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매우 부족한 실정인데, 생물다양성이 높은 습지를 보전하고 미래세대에게 지구환경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래도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의 습지의 현황을 주기적으로 조사하고 학제 간 연구로 습지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을 규명하며 습지복원기술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심지홍 (진주동명고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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