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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0-09-22 20: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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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년의날 기념식에서 ‘공정’이란 단어를 무려 37번이나 언급했다. 곳곳에 깊이 뿌리내린 불공정과 이로 인한 분노를 인식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공정은 문재인 정부가 탄생의 근간으로 내세우는 국정철학이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며 취임사에도 공정의 가치를 담았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대학 입시 특혜의혹 등에 이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 복무 특혜의혹은 ‘아빠 찬스’‘엄마 찬스’라는 분노를 불렀다. 이는 ‘선택적 정의’라는 조어를 생산하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연결됐다. 앞서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의 정규직 전환 논란까지 ‘불공정이슈’는 꼬리를 물었다. 한국 사회에서 속칭 ‘공정 척도 3종 세트’라고 일컫는 대입과 병역, 취업을 총망라했다.

    추 장관 아들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동부지검은 고발된 지 8개월이 지나서야 추 장관 아들과 관련자를 소환해 불신을 자초했다.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지는데 아무것도 밝혀진 것은 없다. 집권당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집단 엄호에만 급급해한다. 이러고도 공정을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기에 더해 추 장관의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은 의구심만 더 키울 뿐이다. 동부지검 인사와 관련한 의혹을 제기하는 윤한홍 의원에겐 “소설”이라고 되받아 국회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최형두 의원이 추 장관이 딸 가게에서 정치자금을 사용한 내역을 거론하자 “딸 가게라고 해서 공짜로 먹을 수는 없다”며 본질을 비켜갔다. 이에 최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의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일감몰아주기와 내부자거래로 정의와 공정에 반하는 일”이라며 “(자녀 가게에서는)개인 돈으로 쓰라. 정치자금은 그런데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고 일침을 가했다.

    문 대통령은 청년의날 기념식에서 “공정은 촛불 혁명의 정신이며 우리 정부의 흔들리지 않는 목표”라고 강조했다. 또 “권력기관의 개혁은 공정과 정의로움을 위한 기본”이라며 이틀 전 37차례에 걸쳐 공정을 언급한 기조를 이어갔다. 그러나 사회를 이념으로 양분하고 공정성 훼손 논란을 촉발한 조 전 장관이나 추 장관 사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법 앞의 평등과 공정을 구현할 이들을 둘러싼 의혹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데도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틀뒤인 21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정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에서는 “개혁을 이끈 여러분의 노고를 높이 치하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이 추 장관 신임에 흔들림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메시지란 해석이 나왔다. 특히 이날 회의장엔 문 대통령과 추 장관이 회의 시작 직전 동시에 입장해 눈길을 끌었다. 청와대 측은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그 상징성에 대한 의미부여는 꼬리를 물고 있다.

    수만 번 공정을 기치로 내건다고 공정 사회가 구현되는 건 아니다. 실천없이 말로만 공정·정의를 외치는 건 국민 우롱에 다름 아니다. 권력층이 쥐락펴락하다 고스란히 자녀에게 물려주는 특권과 특혜를 없애야 한다.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약자의 분노 시발점이 여기에 있다. 차이는 받아들여도 차별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다. 논어에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라는 말이 있다. 백성은 가난한 게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을 더 근심한다는 뜻이다.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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