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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2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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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농산물 ‘명작(名作)’을 먹는다- 강호동(합천 율곡농협 조합장)

  • 기사입력 : 2020-07-12 22: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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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어느 유명 의상디자이너가 패션쇼를 열 때마다 정작 자신은 항상 남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옷을 입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은 그가 검소하고 겸손까지 하다고 칭찬하는 이가 많았다.

    그런데 정작 본인에게 물어보니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만든 작품에 대한 ‘몰입’이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자신의 의상 작품 발표회에서 오직 그가 만든 작품에게만 온 시선이 집중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가 본인의 의상은 가장 관심을 끌지 않을 평범한 색상의 옷을 입는다는 것이다. 예술인이 자신보다도 만든 작품에만 몰입한 결과다.

    내가 몸담고 있는 율곡농협의 어느 조합원은 논도 30여마지기 넘는 알부자이다. 하지만 손자들이 조부모를 찾아와 농사지은 딸기를 내주어도 자신이 출하하는 품질 좋은 딸기는 주지 않는다. 그런 그를 두고 주위 사람들은 “저렇게 돈 벌어 죽을 때 싸가지도 못할 텐데 손자들 오면 좋은 딸기라도 먹게 해주지”하면서 혀를 차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명 작가가 만든 의상 발표회 옷이 작품이듯이 농민에게는 자신이 만들고 박스에 담아 출하하는 농산물이 출품작과 같은 것이다. 어느 예술인이 전시회에 나갈 출품작을 손주가 조른다고 출품도 하기 전에 먼저 주는 이가 있겠는가?

    요즘 농민들도 큰 재산은 아닐지 몰라도 자식들 나눠주고도 죽을 때까지 쓰고 남을 만큼 정도의 돈은 있는 농가도 많다. 그런데 이들 농민들도 모양 좋고 품질 최상품 농산물은 죄다 박스 담아 공판장이나 거래하는 상회에 보내고 자신들은 ‘B품’ 이하를 먹는다. 돈이 없어 그러겠는가? 도공(陶工)이 혼을 담은 도자기를 내듯이 출하하는 농산물은 작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농민은 재배한 농산물이 균일하고 예쁜 모양으로 박스에 포장될 때 그 순간만은 자신의 작품에 몰입하여 정성을 다한다. 돈은 그다음에 그에 대한 보상으로 농가 통장에 꼽히는 것이다.

    도시의 소비자들께 바라건대, 내 식탁에 오르는 농산물들이 농민이 그들의 손자에게도 주지 않고 출품한 ‘작품’을 먹는다는 생각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평범할지 모르는 농산물을 ‘작품’으로 먹는 ‘소비자의 품격’도 함께 올라가리라 생각한다.

    도시민들에게 바라는 욕심이 하나 더 있다면 그저 음식으로만 먹는 농산물이 아니고 출품작으로 대하여 귀하게 감상하며 즐겨 주셨으면 하는 것이다. 더불어서 우리 농민, 농업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함께 품격을 높여서 보아주시기를 당부드리고 싶다.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은 존경하면서 전 세계 최고의 명품 농산물을 만들어 내는 한국 농업인을 ‘일꾼’ 정도로 여기는 우리들의 눈높이 수준이 알고 보면 부끄러울 수 있다.

    나는 15년 가까이 조합장을 하면서 세계 여러 나라 농업현장을 다녔다. 이를 통해 각국의 농산물 수준을 많이 보아왔지만, 사과·배 과일이고 파프리카·양파 등 채소건 우리나라 농산물만큼 품질 좋고 멋져 보이는 농산물이 별로 없었다. 이미 우리는 ‘작품’인 농산물을 먹고 있고, ‘장인(匠人)’인 농업인이 지천에 널려 있듯 ‘작품’과 ‘장인’을 가까이 곁에 두고 있는 행복한 국민이다.

    강호동(합천 율곡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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