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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03) 분저부본(分貯副本)

- 부본을 나누어서 보관하다

  • 기사입력 : 2019-11-19 07: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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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조상들은 학문과 문화를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분들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우리나라의 것이 16건 등재되어, 세계 4위에 올라 있다. 중국은 13건, 일본은 9건이다. 세계 1위는 24건인 독일이다. 기록문화유산이 많다는 것은 우리의 찬란하고도 우수한 역사와 문화를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중국보다 우리나라가 유네스코 기록문화가 많다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문화 창조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기록문화를 보존 전승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증명해 준다.

    그중에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만 예로 들어보겠다.

    조선왕조 472년간(고종 순종 실록은 일제 때 편찬되어 제외)의 기본사료인 ‘실록’은, 1439(세종 21)년부터 4부씩 금속활자로 인쇄하여 춘추관을 비롯한 전주(全州), 충주(忠州), 성주(星州) 등 네 곳에 사고(史庫)를 지어 보관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주를 제외한 나머지 ‘실록’은 모두 소실되어 버렸다.

    광해군(光海君) 때 극도로 피폐해진 상황에서도 전주사고본 실록을 바탕으로 해서 4부를 더 만들어 5대 사고로 늘려 보관하였다. 길 가까이 두었다가 왜놈들의 침략으로 불에 타고 말았기 때문에 더욱 깊숙한 산중에 보관하였다. 1부는 서울 춘추관(春秋館)에 두고, 영변(寧邊)의 묘향산(妙香山), 강화도 마니산(摩尼山), 봉화(奉化)의 태백산(太白山), 평창(平昌)의 오대산(五臺山)에 사고를 지어 보관해 두었다. 묘향산의 실록은 후금(後金)의 침략 직후 무주(茂朱) 적상산(赤裳山)으로 옮기고, 마니산의 실록은 정족산(鼎足山)으로 옮겼다.

    그 당시 국가예산 규모로 볼 때 실록의 편찬과 인쇄와 보관에는 어마어마한 경비가 들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거의 500년 동안 이 전통을 이어왔다.

    그 이후 춘추관 실록은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 소실되었다.

    1910년 일본 강점 이후, 오대산 실록은 일본 동경대학으로 옮겨갔다가 지진 때 대부분 소실되고 74권만 남았는데, 돌려받아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태백산 실록은 부산의 기록정보센터에 보관되어 있다. 정족산 실록은 서울대학교 규장각(奎章閣)에 보관되어 있다. 적상산 실록은 구황궁 장서각(藏書閣)에 이관되었으나, 6·25 때 북한이 가져가 김일성대학에 소장중이라고 한다.

    지금 현재 규장각에는 ‘실록’ 이외에도 약 20만 책의 고서(古書)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도 9만여 책의 고서가 보관되어 있다. 그런데 실록은 5벌씩 부본(副本)이 있었는데, 귀중한 규장각이나 장서각 도서는 부본이 없다. 하나밖에 없는 책도 많다.

    만일 비상사태가 발생한다면 완전히 소멸될 수도 있다. 하루속히 부본을 만들어 남쪽 지방의 대학이나 연구 기관에 보관해야만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우리의 기록문화가 안전하게 보존 전승될 수 있을 것이다.

    * 分: 나눌 분. * 貯: 쌓을 저.

    * 副: 버금 부. * 本: 근본 본. 책 본.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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