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거부의 길] (1595) 제24화 마법의 돌 95

“좀 더 두고 봅시다”

  • 기사입력 : 2019-05-29 20:29:34
  •   

  • 일본인들이 패망했으니 당연히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재영은 일본인들의 핍박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돌아가겠지.”

    무심하게 말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일본인들이 돌아가면 그들의 재산도 두고 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벼락부자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올지도 몰랐다.

    “그럼 조선은 누가 다스려요?”

    “나라가 세워지겠지. 나도 아직은 모르겠어.”

    이재영은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슬금슬금 피하고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에게 큰소리를 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져가던 공출도 사라졌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장사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인들의 모든 통제가 사라졌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고 피했다. 조선인들에게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일본인들이 미곡을 가져가지 않자 장사가 활발해졌다. 조선인들은 전에 없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미곡상들이 사재기를 하면서 쌀값이 며칠 만에 폭등했다.

    “우리도 쌀을 사야 하지 않아요?”

    쌀값이 매일 같이 오르는 것을 보면서 류순영이 물었다.

    “이제 곧 쌀을 수확할 텐데 살 필요는 없어. 쌀값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고…….”

    이재영은 사재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곧 가을이 시작되는 것이다. 쌀을 수확하면 일본으로 가져가지 않기 때문에 폭락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다투어 쌀을 사들이고 있어요.”

    “좀 더 두고 봅시다.”

    이재영은 쌀을 사들이는 일에 신중했다. 어쩐지 닥치는 대로 쌀을 사들이고 싶지 않았다.

    “정식이는 언제 돌아와요?”

    “기다려 봅시다.”

    이재영도 정식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일본이 항복을 했어도 조선은 어수선했다. 일본 경찰과 군대는 여전히 총을 가지고 있었고 관공서를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대구에 있는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재산을 팔기 시작했다. 그들은 며칠 안에 팔아야 했기 때문에 헐값으로 팔았다.

    이재영은 적극적으로 장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국은 어수선하고 시장은 뒤숭숭했다. 일본인들이 대대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선인들은 그들을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36년 동안 조선을 핍박했던 일본인들이었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갔고,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갔다.

    조선에 있는 재산이 아까워 차마 돌아가지 못하는 일본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항복을 하고 닷새가 지나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일본인들 사이에 살아서 돌아가는 것도 다행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그들은 허겁지겁 재산을 팔고 돌아갔다.

    “이게 고려청자래요.”

    류순영은 일본인들이 파는 물건을 샀다. 가구도 사고 도자기도 샀다.

    일본으로 돌아가는 행렬은 점점 많아졌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