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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20년, 경남기록물 관리 원년으로! (3) 도내 기록물 관리 명암

보관 중 영원히 빛 잃고… 이관 중 우연히 빛 보고
되찾은 포로수용소의 기록
지난해 거제시 기록물 정리 과정서 발견

  • 기사입력 : 2019-05-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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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의 중심에는 늘 기록물이 있었다. 무언의 기록물만큼 진중하고 정직한 증인도 없다. 여기 도내 기록물 관리의 민낯을 보여주는 두 사례가 있다. 정체 모를 기간 동안 음습한 지하실에 박혀 있다가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포로수용소의 기록, 독립운동가 김승태 선생 어머니인 조순남 여사의 사라진 내방가사 원본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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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족이 촬영한 조순남 여사 내방가사 ‘김승태만세운동가’ 원본. /김융일씨/

    ◆사라진 조순남 여사 내방가사

    100년 전인 1919년 4월 12일. 김해 장유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날 이강석이 소리 질러 사람들을 모았고 김승태가 태극기를 들고 앞장서 50여명의 무리와 무계리로 향했다. 무계장터로 모인 군중은 3000명으로 늘었다. 정오에는 대청천 언덕에서 김종훤과 김승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흥분한 군중들이 헌병주재소를 포위하자 일본군이 발포하면서 손명조·김용이·김선오 등이 순국했다. 가족들과 시위주도자들은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둘러 헌병주재소를 부쉈다.

    마치 전쟁 같던 장유 만세운동은 김승태와 김종훤을 비롯한 10여명이 주동자를 자임하며 헌병대로 끌려가고 나서야 수그러들었다. 이튿날 새벽 주민 500여명이 정천나루터로 몰려들어 배를 타고 김해 분견소로 면회 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일부는 훈방되고 또 일부는 부산으로 이송돼 징역을 살았다. 장유 만세운동의 기록은 김승태의 어머니 조순남 여사의 내방가사 ‘김승태만세운동가’에 자세히 기록됐다. 내방가사는 만세운동 당시인 1919년 4월 12일부터 이듬해 4월 24일까지의 만세운동 거사 모의부터 아들 김승태가 석방돼 마을에 돌아오기까지의 행적을 추보식으로 기록했다.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면 …일본으/ 득셰●을/ 감당할슈/ 젼이업셔/ ●●●금●션니/불샹한/ ●민들은/ 원혼만되야잇고/ 그남은●셩들은/ 유죄무죄/ 형벌당코/ 활달한/ ●셩들은/ 분분함/ 더욱●●/ 옥슈위슈/ 가가지고/ 허리에/ ●로셔/ 쥴줄리/ 압참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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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대목은 격렬한 만세 운동이 끝난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일본 순사의 폭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잔혹한 죽임을 당했고, 나머지 참가자들은 철삿줄로 허리가 묶인 채 감옥으로 붙들려 가는 현장을 표현한 것이다.

    모두 34쪽인 내방가사는 1976년 3월 한 신문에 ‘●식 소회가’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순남 여사의 내방가사를 연구 중인 이홍숙 창원대 외래교수(문학박사)가 원본 사진을 확인해 본 결과 책 표지에 ‘김승●ㅣ○○○○가’로 된 점을 들어 원래 제목은 ‘김승태만세운동가’라고 주장한다. 내용 말미에 ‘●식 소회가라’는 구절이 붙은 것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내방가사의 의미를 축소한 위장적 어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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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스템상 한글 고어 입력이 불가해 이미지로 대신합니다.

    이 교수는 “책 표지에 필자가 ‘○○○○’으로 표시한 부분은 글자가 지워진 흔적이 있는 부분이다”면서 “한지로 만든 책 표지에 붓으로 써 둔 글자를 물로써 지운 흔적이 역력하고 비록 흐릿하지만 ‘만세운동’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내방가사라는 장르를 통해 마치 취재기자가 현장을 취재하듯 한 자씩 써 내려 갔다는 점에서 다른 회고록과 비교할 수 없으며, 생동감 넘치는 만세운동 현장, 애국심과 우국충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기록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김승태 지사가 감옥에서 풀려난 뒤 일제의 끊임없는 감시를 받아왔고, 조순남 여사는 장유 만세운동의 생생한 기록물과 다를 바 없는 이 책이 언제든 압수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친정 종질녀에게 몰래 맡겨 보관해왔다고 했다.

    그러나 조순남 여사의 내방가사는 현재 원본이 아닌 사진본만 전해지고 있다. 10여년 전 김해시로 원본이 넘어간 뒤 사라졌기 때문이다. 김승태 지사의 유족이 지난 2005년 장유 3·1운동기념탑에서 열린 3·1운동 기념식에서 원본을 시에 기증했지만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이 같은 사실은 이 교수가 지난해 4월 관련 논문을 준비하면서 유족을 통해 원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알게 됐다. 김해시는 내방가사 원본을 찾아 나섰지만 1년 넘게 찾지 못했다. 김해시 관계자는 “공문서 기록물, 문화원 등에서 원본을 찾고 있지만 현재까지 발견하지 못했다”며 “당시 담당 공무원과 문화원 직원 등과 통화를 했지만 알고 있는 내용이 없었다”고 했다. 김승태 지사의 손자인 김융일(77)씨는 “당시 행사장에서 친척 형이 김해시 관계자에게 전달하는 것을 확실히 봤고 사진물로도 남아있다”면서 “조순남 여사를 독립유공자로 보훈처에 신청해 놓은 터라 원본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그날의 진실을 알리고자 일 년에 걸쳐 한 자 한 자 손으로 기록한 중요한 기록물이 보존기관의 관리 소홀로 인해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라며 “이는 비단 유족에게만 국한되는 사실이 아닌 경남도민 모두에게 가슴 아픈 일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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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발견된 포로수용소 강제 징발 피해조사 기록물. /거제시/

    ◆이관 중 발견된 포로수용소 기록

    ‘11억3311만4096환’. 6·25전쟁 때 포로수용소 설치에 따른 거제 주민들의 강제 징발 피해액이다. 이 사실은 지난해 거제시가 경남기록원에 보낼 기록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군 징발관계 서류철-피징발자 피해 조서’란 제목의 해당 기록물을 보면 지난 1955년 12월 20일 거제군수가 경상남도 내무국장에게 보낸 문서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유엔군 포로수용소 설치에 따른 피징발자의 피해를 보상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 문서는 1955년 10월 29일 내무부 차관의 재조사 지침에 따라 읍면별로 공공과 민간 소유로 구분해 피징발자들의 성명, 주소, 피해규모 등을 조사한 것으로 총 2권, 583쪽 분량이다. 그동안 포로수용소 관련 기록물이 다수 수집됐지만 거제에서 관련 기록물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남기록원은 지난해 5월 개원 이후 경남도 및 18개 시군에 연도가 가장 오래된 중요 기록물을 순차적으로 이관할 것을 요청했다. 지난해 경남도와 각 시군에서 이관받은 기록물은 1만여 권이다. 지난 2007년 관련법 개정 이후 시군 기록물이 어느 곳에도 이관되지 못하고 문서고에 보관돼 왔지만 경남기록원 개원 후 비로소 중요 기록물들을 이관할 수 있는 영구기록물 관리기관이 마련된 셈이다. 포로수용소 강제 징발 피해액 관련 기록은 경남기록원 개원으로 빛을 본 중요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관 과정이 없었다면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점에서 도내 기록물 관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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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태 지사의 손자 김융일씨가 증조모 조순남 여사가 쓴 내방가사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박기원 기자/

    ◆“시군 기록관리 개선해야”

    지난 2016년 당시 행정자치부의 경상남도 정부합동감사에서 경남도와 15개 시군이 공공기록물관리법과 관련한 지적을 받았다. 진주시는 2013~2015년 의료·가족관계 기록물 등 50여 권을 기록관의 평가 절차 없이 무단 폐기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 의령군은 2015년 보존기간 30년인 호적사건접수장 등 9권을 보존기간이 만료되지 않았음에도 평가대상으로 분류해 폐기한 사실이 확인되는 등 크고 작은 관리 문제가 지적됐다. 기록물 보존 문제뿐만 아니라 생산 단계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도내 기록연구사들은 기록물 관리의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록연구사는 “당시 감사에서는 시설 문제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오늘 당장 감사가 시작된다면 대부분 시군이 지적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며 “시군 기록관 개선이 먼저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경남기록원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기원 기자 pk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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