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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542) 제24화 마법의 돌 42

‘신부가 미인이구나’

  • 기사입력 : 2019-03-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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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은 순영이었다. 나이는 17세라고 했다.

    “풍산 류씨면 양반 중에 양반이지.”

    작은아버지 이상수가 누구보다도 좋아했다.

    “풍산 류씨 문중에 누가 인물입니까?”

    “서애 류성룡 대감이 있다. 대원군 때는 좌의정을 지낸 류후조 대감이 있고….”

    이상수가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서애 류성룡은 동인이었고 류후조는 남인이었다. 남인은 경종 때 숙청을 당한 후 안동 김씨 세력에게 밀려 등용되지 못했다. 여름에 혼담을 맺고 가을에 혼인을 했다. 어른들이 추진하는 결혼이었기 때문에 아내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혼인식을 마치고 초야를 치를 때 보자 자그마한 키에 눈이 컸다. 전체적으로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신부가 미인이구나.’

    이재영은 부인 류순영이 마음에 들었다. 이재영은 류순영과 함께 온양온천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신혼여행이 드물던 시절이라 당사자도 놀라고 가족들도 놀랐다. 아내는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얼굴을 붉히면서 부끄러워했다.

    이재영이 대구에 잡화상을 연 것은 혼인을 하고 여섯 달이 지났을 때였다. 그동안 양복을 입고 서울을 뻔질나게 오가더니 느닷없이 대구역 앞에 가게를 열었다. 아내는 종가의 며느리였기 때문에 달성 시가에서 지냈다.

    ‘양반이 장사꾼 노릇을 하다니.’

    집안 어른들이 혀를 찼다. 이학수는 이재영이 무엇을 해도 탓하지 않았다.

    “우리 아들놈은 크게 될 인물이야.”

    이학수가 껄껄대고 웃었다. 이학수는 무골호인이었다. 그는 붓으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하여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붓글씨를 쓰고 이재영에게도 글씨를 쓰라고 했다. 이학수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편지를 쓸 때도 붓글씨로 써야 돈을 보내주었다. 그 바람에 이재영은 달성 인근에서 명필로 불렸다.

    일본에서 고관대작들의 자제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그의 서체를 보고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조선의 서체에 대해서 이학수와 논쟁을 했다.

    “김정희가 글씨를 잘 쓰기는 하지. 허나 원교의 글씨만은 못하다. 원교체가 가장 아름다운 글씨체야.”

    원교체는 원교 이광사의 글씨체를 말한다.

    “원교체가 한석봉의 글씨보다 낫습니까?”

    이재영은 이광사에 대해서 잘 몰랐다.

    “내가 보기에는 최고의 글씨다. 이광사의 아들이 누군지 알아?”

    “모릅니다.”

    “쯧쯧… 이긍익이라고 한다. 이긍익이 누군지는 알아?”

    “아버지, 그냥 말씀해 주세요. 제가 언제 조선역사를 공부했습니까?”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이라는 조선역사를 쓴 사람이다. 아주 방대한 역사서지. 그 한 가지 일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기회가 있으면 한번 읽어 봐라.”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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