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일구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당혹스럽다. 사계절 적정온도 시스템이 돌아가고 헛바람 한 점 얼씬 못하는 집에서 삼시세끼 더운 밥 먹으며 잘 살고 있는 사람을 노숙자라니! 그것도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니! 아무리 상상의 자유가 허락된 시세계라지만 이건 너무 나간 것 아닌가! 그런데 ‘어찌하랴/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구절이 왜 이리 눈에 익지. 혹 화무십일홍? 일장춘몽? 공수래공수거? 아! 갑자기 알몸으로 내쫓긴 듯 한기가 엄습한다. 서럽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을 한순간에 영구노숙자로 만들어버리는 이런 시가 노숙 내력 시시콜콜 헤아려주는 자상한 오라비 같은가. 엄살궂은 비관주의자 같은가. 아님 여전히 당혹스러운가. ‘어떤가 몸이여’ 조은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