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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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박기원 기자의 ‘러브위더스’ 동행 취재

베트남 시골마을 목바이서 환자 치료·아픈 마음까지 보듬다

  • 기사입력 : 2018-11-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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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자로 붐비는 베트남 호찌민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차로 두 시간을 달리면 벤카우 현 목바이 마을이 있다. 도로 가득한 오토바이 행렬에 차량은 제 속도로 나아가지 못한다.

    목바이는 호찌민과는 먼, 오히려 캄보디아와 가까운 국경지대로 도시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멀다. 젊은이들은 공장으로, 남은 이들은 들판으로 나가 힘겹게 생계를 이어간다. 의료 시스템도 목바이까지는 닿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멀고, 비싸서 아픔을 참고 견뎌낸다.

    마을 병원은 실질적인 의료 기능을 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진료를 받으려면 큰 결심으로 호찌민까지 나가야 한다. 응급 의료 시스템도 제 기능을 못한다. 쌓이고 쌓인 아픔은 그들 속에서 커져만 간다.

    경남지역 의료 봉사단체인 ‘러브위더스(Love With Us)’가 베트남 목바이의 소외된 환자들을 위해 손을 내밀었다.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러브위더스의 열두 번째 해외 의료 봉사활동에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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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릎이 아프다며 의료진을 찾은 응웬티흥(85) 할머니. 그녀는 병원에서도 오토바이 헬멧을 벗지 않았다.

    ◆마을 병원에 차려진 ‘러브위더스 종합병원’

    벤카우 현에서 캄보디아 국경으로 뻗은 도로를 달리다 보면 논 한가운데 벤카우 의료센터가 있다. 거창한 간판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규모는 크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병실은 텅 비어 있고, 제대로 된 의료기기는 찾아볼 수 없다.

    주민 응웬티가이(59)씨는 벤카우 의료센터를 설명하며 “주민들은 돈이 많이 없다. 많이 아플 때는 약을 타러 온다. 참다가 못 참으면 호찌민으로 간다”고 했다. 러브위더스 의료진은 이곳 2층 병실에 내과, 외과, 재활의학과, 소아과, 임상검사실을 마련했고 강당에는 약국을 꾸렸다. 자원봉사자들은 병원 강당 한편에서 1500명분의 의료 키트와 아이들에게 줄 학용품, 헌 옷을 정리했다. 한국 의료진이 온다는 소식에 진료 시작 전부터 300여명의 주민들이 몰리면서 장사진을 이뤘다. 진료실 앞에는 임시 미용실을 마련해 미용사 2명이 주민들의 머리를 손질했다.

    ◆몸도, 마음도…잊혀지지 않은 전쟁의 아픔

    응웬반람(61)씨는 두통을 호소하며 내과를 찾았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보이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전역증이었다. 응웬반람씨는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른 1972년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의 나이 15살이었다. 그는 양팔을 크게 벌리면서 총의 길이를 설명했고, 떠이닌성 일대에서 적군과 대치했다고 털어놨다. 매복 작전을 하던 어느 날 밤, 눈앞에 수류탄이 날아들었다.

    사방으로 퍼진 작은 파편들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그가 잃은 것은 왼쪽 눈과 세 손가락, 뇌 신경이었다. 왼쪽 눈에는 의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상의를 올려 심장과 그 아래에 있는 상처를 번갈아 가리키며 ‘운 좋게 살아 남았다’고 웃음을 지었다.

    머리를 다친 이후 그는 만성적인 두통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친다고 하소연했다. 응웬반람씨는 “전쟁에 많은 아이들이 참전했다. 그들은 끔찍한 기억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두통을 완화할 수 있는 약과 영양제를 처방했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의 하소연을 귀담아들어 주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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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가 시작되기 전부터 주민 300여명이 병원에 몰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응웬티한 할머니 이야기

    2000년대 초 목바이에 다국적기업들이 진출하면서 젊은이들은 공장으로 향했다. 1년 4모작인 고된 쌀농사는 오롯이 노인들의 몫이 됐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 대부분은 근골격계 질환을 갖고 있었다. 재활의학과를 찾은 응웬티한(71) 할머니의 오른 손가락은 왼쪽으로, 왼 손가락은 오른쪽으로 휘어져 있었다. 얼마나 일했는지 묻는 질문에 ‘평생’이라고 했다.

    어릴 적 아버지를 도와 벼농사를 지었고, 시집와서는 생업이 됐다. 할머니는 그동안 바빠서, 멀어서 병원에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농사일에는 손을 뗐지만, 손발이 아파 잠을 설칠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불편한 건 손만이 아니었다. 왼쪽 무릎은 어릴 적 오토바이 사고로 어긋난 상태였고, 오른쪽 무릎에도 관절염이 있었다. 의료진은 퇴행성 관절염으로 진단했다.

    재활의학과를 찾은 환자 가운데는 허리와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국 사람들에게도 흔한 질환이지만, 베트남은 연령대가 낮았다. 퇴행성 관절염 환자는 30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고, 50~60대가 주를 이뤘다. 의료진은 도수치료와 함께 근육통 약을 처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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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살이던 1972년 베트남전에 참전해 왼쪽 눈, 세 손가락과 뇌 신경을 잃어 두통을 앓는 응웬반람씨.

    ◆할머니, 오래 사세요

    쌍 할머니(80)는 활처럼 휜 허리를 지팡이로 지탱하며 진료실로 들어왔다. 한 걸음씩 내딪는 모습은 위태로울 정도였다. 손녀, 손녀의 아들이 양옆에서 부축했다. 쌍 할머니는 의료진을 마주하면서 대뜸 “약을 달라”고 소리쳤다. 채혈 결과 당뇨 수치가 대단히 높았고, 혈압은 179/71mmHg로 고혈압이었다. 할머니도 자신의 증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 손녀와 함께 호찌민의 큰 병원으로 가 고혈압과 당뇨약을 타 온다.

    할머니가 병원에 가는 날이면 가족들은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호찌민 병원에는 각지의 환자가 몰리면서 새벽 4시부터 집을 나서야 겨우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비용도 만만찮다. 진료비는 차치하고서라도 교통비가 큰 부담이다. 쌍 할머니 집에는 자동차가 없다. 두 시간 거리를 할머니를 태우고 오토바이로 갈 수 없는 노릇이다.

    가족들은 140만동(한화 6만8000원)을 내고 택시를 타거나, 65만동을 지불하고 차를 빌려야 한다. 공장 노동자 임금이 500만동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큰돈이다. 쌍 할머니의 손녀는 “돈이 많이 들지만 할머니와 함께 병원 가는 것이 즐겁다.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뇨, 고지혈증 환자 많아

    임상검사실에서는 혈액 검사가 진행됐다. 소량의 혈액을 뽑는 검사지만 주민들은 쉽사리 팔뚝을 내보이지 않았다. 평소 정기 검진을 하지 않는 이곳 주민들은 주삿바늘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현지 의사들의 독려로 200명이 넘는 주민들이 검사를 했다. 피를 뽑아 간 기능, 당뇨 등을 확인했다. 3일간의 검사 결과를 보면 당뇨와 고지혈증 환자가 두드러지게 많았다.

    깡마른 사람들에게서도 수치가 대단히 높게 나오면서 의료진을 당황케 했다. 당화혈색소 수치가 14%(6.5% 미만)를 넘어서는 환자들도 있었고, 처음으로 당뇨 검사를 해본 사람도 있었다. 환자들 가운데는 ‘왜 한국 기준을 적용하느냐’고 따져 묻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의료진은 주민들의 식습관 문제와 더불어 정기적인 검사가 어려운 환경을 환자가 많은 이유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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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투안B 초등학교 학생들이 K-POP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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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바이에 울려퍼진 아리랑과 K-POP

    목바이로 떠나기 1년 전. 러브위더스는 공연팀을 꾸렸다. K-POP 댄스, 플루트 공연, 판굿, 가야금 공연 등 주민들에게 선보일 공연을 준비해왔다. 그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공연팀은 벤카우 러이투언 초교와 안투안B 초등학교를 찾았다. 낯선 이들의 방문에 학생들은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공연의 막이 오르자 이내 동화됐다. 서툰 베트남 인사말이 그들의 마음을 열었다.

    공연팀과 학생들은 한데 어울려 춤을 췄고, 곡이 끝나면 ‘한 번 더’를 외치기도 했다. 국적은 그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이곳 목바이 주민들은 문화생활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공연팀이 온다는 소식에 학생들의 부모를 비롯해 조부모, 동생 등 대가족을 이끌고 온 주민들이 많았다. 공연이 끝나자 아이들은 종이와 연필을 들고서 공연팀 앞에 섰고, 주저 없이 사인을 요청했다. 학생들은 러브위더스에서 준비한 학용품과 가방을 두 손에 들고서, 함께했던 기억을 가슴에 간직한 채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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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이투언 초등학교를 찾은 공연팀이 전통춤을 선보이고 있다.

    ◆“다시 돌아오겠다”

    벤카우 현 부군수는 목바이를 찾은 봉사단에게 “다시 찾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경상남도의사회를 주축으로 구성된 비영리 민간봉사단체 러브위더스의 해외 의료봉사는 이번이 열두 번째로, 목바이는 네 번째 방문이다. 첫 방문에는 의료진만 찾았지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공연팀도 동행하게 됐다. 주민들도 러브위더스를 오롯이 기억하고 있었다.

    3년째 러브위더스 병원을 찾은 장데응(71·여)씨는 “살아 있으면 내년에도 꼭 보고 싶다”며 의료진의 볼을 쓰다듬었다. 네 번째 방문이지만 아쉽게도 목바이의 의료 시스템은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러브위더스는 베트남 의료진과 정기적인 교류를 통해 현재의 보건의료시스템을 한 발짝 앞으로 옮겨 놓기 위해 목바이를 다시 찾고 있다. 의료 봉사를 통해 주는 것보다 오히려 받는 것이 더 많다는 러브위더스 봉사단. 그들은 다시 목바이를 찾기로 주민들과 약속했다.

    봉사단을 인솔한 마상혁 과장은 “지속적인 방문을 통해 현지 의료진과의 인적 교류 체계를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목바이 주민들에게 전달된 의료물품, 선물 등은 기부를 통해 마련됐다. 베트남 현지 교통편과 통역은 태광실업(주)의 도움을 받았다. 태광실업그룹의 베트남목바이(주)는 벤카우 현 주민 1만여명을 고용하고 있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사회적 활동을 벌이고 있다.

    베트남 의료봉사에는 창원파티마병원 마상혁·한양천·최승휘, 희연병원 김양수 등 의사 4명과 대학약국 김미경 약사, 창원파티마병원 하정화·백수빈·최정희·허보람, 북면이화병원 최은정 등 간호사 5명, 씨젠의료재단(임상검사) 황다현·장재웅·이재일, 박수윤·박희수 미용사, 전주연·박귀영·김연옥·이진희·최연지·김민서·김태록·플루테움앙상블 박보민 등 공연팀 8명, 자원봉사자 9명, 경상남도의사회 조혜인·정대훈 등 39명이 참여했다.

    글·사진= 박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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